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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립미술관장을 잘 뽑아야 하는 이유
2022년 12월 20일(화) 22:00
며칠 전 서울의 유명 갤러리에서 열린 지역 원로작가의 초대전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이날 전시회는 작가의 명성 때문인지 박서보 화백을 비롯해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내로라 하는 명사들이 많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 곳에서 만난 전시기획자 J는 현재 공석중인 광주시립미술관장(시립미술관장)과 관련해 조심스럽게 ‘서울 분위기’를 들려줬다. 광주 사정에 밝은 J에게 두달 전부터 시립미술관장의 공모 여부를 묻는 서울 지역의 인사들이 많다는 거다.

내용인 즉슨, ‘무늬만 공모’라는 소문이 맞냐는 것이다. 시립미술관장에 관심이 있는데 ‘내정된 사람’이 있다는 말이 돌아 망설여진다는 얘기다. 괜히 ‘순진하게’ 지원해 들러리를 서게 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에서다. 순간, 어쩌다 이런 근거없는 루머가 서울까지 퍼졌는지 씁쓸했다.

사실, 광주시립미술관장 공모를 둘러싼 설왕설래는 지난 9월에 실시된 1차 공고때부터 나돌았다. 캠프 출신 모씨가 내정됐더라는 이야기에서 부터 강기정 시장과 인연이 있는 모 대학 교수가 광주시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고사하면서 ‘일’이 꼬였다는 소문까지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이유야 어쨌든 1차 공모에서 서류심사를 통과한 5명이 면접을 거쳤지만 ‘적격자 없음’으로 일단락 된 후 현재까지 공석 상태다. 광주시의 선임이 늦어지자 일각에선 특정인을 뽑기 위한 물밑 작업이 진행중이라는 말에서부터 시장과 가까운 외부 인사가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특정인을 ‘밀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카더라’ 통신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은 과거 일부 전임 시장들의 선거 캠프에서 ‘공을 쌓은’ 미술인들이 시립미술관장에 임명된 예가 있기 때문이다.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역량과 전문성 보다는 자기 사람들을 미술관장에 ‘꽂는’ 바람에 지역 문화계에선 아무리 능력 있어도 캠프에 들어가야 한자리 하게 된다는 자조적인 농담이 떠돌았다. 능력 있는 ‘입지자’들이 선뜻 지원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광주시가 최근 개방형직위인 시립미술관장직 임용시행계획을 재공고 하면서 미술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9월 ‘적격자 없음’으로 결론내린 지 3개월 만이다. 관장은 상설 전시, 국내외 교류·협력, 미술 작품과 자료의 수집·보존·전시, 대관 등 업무를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다. 특히 올해 초 문을 연 G.MAP(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플랫폼)까지 지휘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전문성과 리더십이 요구된다.

시립미술관은 1992년 전국 최초로 개관한 공립미술관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핵심 미술인프라이지만 시스템이나 운영, 콘텐츠는 이를 뒤따라가지 못한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발빠르게 대응하는 21세기형 수장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특히 새 시립미술관장 선임은 민선8기의 문화행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이다. 지역주의에 기대거나 전통적 프레임에 갇힌 리더는 미술관의 미래가 담긴, 큰 그림을 그리기 힘들다. 그리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광주시민들에게 돌아온다. <문화·예향국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