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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겨울철 농사
더 바빠진 농한기…가욋일 찾아 나서는 청년 농부들
2024년 02월 18일(일) 19:50
/클립아트코리아
농촌에서 말하는 농한기(農閑期)는 바쁜 농사일을 갈무리하고 다가올 농번기(農繁期)를 대비하는 시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농한기는 파종·재배·수확의 농사주기가 순환하는 전통사회에서 통과의례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근래 들어 벼농사를 중심으로 설정된 농한기의 개념은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각종 시설채소와 다양한 농산물의 생산·유통이 사계절 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농번기에 집중된 노동력이 연중 고르게 분산된 것이다.

길다면 긴 농한기에 선대 농부들은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흥겨운 민족이었으니 한가하니 놀았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겨울철 농한기라고 해서 허투루 시간을 쓰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동절기에 이루어지는 빼놓을 수 없는 소일거리는 이듬해 사용할 농기구를 수리하고 새로 만드는 일이다. 곡식을 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볏섬이나 가마니 치기는 농한기의 필수 작업이었다. 이 밖에 멍석·맷방석·둥구미·삼태기·망태기·종다래끼 따위를 만드는 일과 봇줄(말이나 소에 써레, 쟁기 따위를 매는 줄) 들이기, 새끼 꼬기, 약초 캐기 등이 모두 겨울철 농한기에 이루어지는 농가의 일상이었다고 한다.

닭이나 돼지를 사육하고 소 살찌우기에 열중하던 1960~1970년 산업화 시대를 지나 1980년대가 되면 농촌에 ‘백색혁명’으로 불리는 비닐하우스가 등장했고 농가에선 한겨울 오이와 고추, 토마토, 딸기에서 장미나 안개꽃 등 화훼작물까지 경작하며 열심히 살았다. 이 시기 특화작물로 돈 좀 만졌던 농부들에겐 농한기가 짧게 느껴졌을 것이다.

농촌이 바빠졌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꽤 된 것 같다. 이젠 겨울에도 놀지 않는다는 것으로, 농부들도 그만큼 할 일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도 그럴 것이 농촌의 노령화·공동화 현상과 영농기술의 발전으로 무작정 다음 농사를 준비하고 소일거리나 하던 전통적인 농한기의 개념이 무색해졌고 실제로 더 바빠진 것이다.

이젠 농촌의 농한기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청년은 물론 노령인 어르신까지 겨울철 시설채소 재배하고 체조 교실 등으로 건강관리 하며 각자의 방식대로 농한기를 보내고 있다.

특히 귀농·귀촌한 청년들은 겨울이 오히려 더 바쁘다고 한다. 시설 하우스를 통해 특화작물을 재배하는데 신경을 써야 하고, 미래 희망이 될 유망작물 키우는 방법도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

이러한 상황변화와 관련 최근 접한 시골로 귀농한 한 청년의 글은 의미심장하다. 귀농 청년이 처한 현실을 솔직하게 담았는데 내용은 이렇다.

“실제로 우리 집을 포함한 많은 농민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통 한해의 갈무리가 끝난 후 12월과 1월은 농한기지만 먹고살려면 농민은 쉴 새가 없다. 농번기에는 숨 가쁘게 자라나는 농작물 속도에 맞추느라 주말 없이 일하고, 농한기에는 쑥쑥 자라나는 내 어린 자식들을 먹이느라 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농작물을 재배해 얻는 소출만으로는 먹고살기가 영 빠듯해 우리 집을 포함해 주변의 청년 농부 여럿은 먹고살기 위한 단기 일자리 찾기에 매달려야만 했다. 이번 겨울 추위는 참으로 매섭고 슬펐다.”

힘겨운 농촌 생활에 대한 넋두리로 읽히지만, 가슴을 시리게 한다. 농번기는 물론 조금 여유를 가져도 좋을 농한기까지 일하지만, 소득이 충분하지 않아 하릴없이 농사 외에 가욋일을 찾아 나선다니 마음이 짠하다.

/ big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