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고려거란전쟁과 실증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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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의 창’] 고려거란전쟁과 실증사학
2023년 11월 16일(목) 00:00
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이 방영 초기부터 역사왜곡 논쟁에 휘말렸다. 고려 북방 국경선을 지금의 함경도 남쪽까지 축소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제작진은 억울할 것이다. 실증사학이라 자화자찬하는 기존 역사학계의 견해를 따랐는데 식민사학을 추종했다고 비판받으니 말이다.

고려의 행정구역은 5도 양계로서 서북쪽 북방강역을 북계(北界), 동북쪽 북방강역을 동계(東界)로 삼았다. 고려 북방강역에 대해서 현재 사용하는 ‘한국사교과서’들은 모두 압록강에서 함경남도 안변까지 동남쪽으로 비스듬하게 그은 사선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 지도에 따르면 고려는 평안북도 거의 전역과 함경북도 전역 및 함경남도 대부분을 차지하지 못했다. 고려는 한반도의 2/3밖에 차지하지 못한 볼품없는 나라이다. 고려의 동북방 강역인 동계에 대해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대체로 함경남도 이남으로부터 강원도 삼척 이북의 지역에 해당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현재 사용하는 ‘한국사교과서’와 같다.

그럼 이런 교과서와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사료에 맞는지 살펴보자. 동계에 관한 가장 기초 사료는 ‘고려사, 지리지’다. 고려사 지리지는 ‘동계’에 대해서 “동계는 본래 고구려의 옛땅이다…비록 연혁과 명칭은 같지 않지만 고려 초로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공험 이남에서 삼척(三陟) 이북을 통틀어 동계라 일컬었다.(고려사, 지리지 동계)”라고 말하고 있다. 고려사의 ‘공험’을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함경남도 이남’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공험은 공험진을 뜻하는데 고려 장수 윤관이 예종 3년(1108) 여진족을 북방으로 몰아내고 공험진 선춘령에 고려의 강역이라는 뜻의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는 비석을 세운 곳이다. 고려사 지리지는 “공험진은…선춘령 동남쪽으로 백두산 동북쪽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고려사는 백두산 동북쪽 공험진 선춘령에 윤관 장군이 고려 강역이라는 비석을 세웠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교과서나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백두산 동북쪽’을 백두산 남쪽 1천여 리의 함경남도 안변으로 표시하고 있다.

공험진이 두만강 북쪽이라는 사실은 조선의 국가기관이나 학자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는 두만강 경원에서 공험진까지 북쪽으로 정확히 688리라고 적고 있다. 또한 조선의 ‘동국여지승람’은 “공험진…선춘령은 두만강 북쪽 7백리에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성호 이익(李瀷:1681~1763)은 ‘성호사설’의 ‘윤관비’라는 글에서 “윤관의 비는 선춘령에 있으니 두만강 북쪽으로 7백리가 되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광복 80년이 다 되가는 대한민국에서 두만강 북쪽 7백리를 함경남도라고 축소해 가르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역사학계의 주장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 그들이 ‘역사의 신’으로 떠받드는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무엇이라고 했는지 찾아보면 된다고 여러 번 말했다. 이른바 국사학계(國史學界)(?)의 태두라는 이병도 박사가 “매우 존경할만한 인격자”라고 추앙한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는 1923년 ‘만선(滿鮮)지리역사연구보고’에서 고려 강역을 조작한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면서 이를 실증사학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실증사학’에 대해서 “역사 연구에 있어서 실증적인 방법을 중시하는 역사학”이라고 정의하면서 “실증사학은 19세기 말부터, 특히 일제시대부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시라도리(白鳥庫吉)·이케우치(池內宏)·이마니시류(今西龍) 등이 대표적인 학자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이 해방 후 실증사학으로 이름표를 바꾸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실증사학은 ‘실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실증사학’을 따르면 객관적인 역사왜곡이 된다.

‘고려거란전쟁’ 제작진이 지금이라도 빨리 이런 현실과 ‘진실’을 깨닫고 그릇된 역사관을 시정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국민들이 내는 수신료로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기본 예의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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