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비인간에게서 얻은 진짜 인간다움 - 예소연 장편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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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소설처럼’] 비인간에게서 얻은 진짜 인간다움 - 예소연 장편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2023년 11월 09일(목) 00:00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무엇일까? 인본주의와 합리적 사고, 배려와 예의, 과학과 기술, 믿음과 헌신 같은 것들을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위와 같은 단어를 떠올린 채 지금 우리는 과연 인간다운가? 하고 묻는다면 그렇다 대답하기 주저하게 된다. 인간은 같은 인간을 괴롭히고, 혐오하고, 때리며, 심지어 죽인다. 멀리 팔레스타인에서는 그저 그곳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만 명 이상의 어린아이가 목숨을 잃었다. 가까운 편의점에서는 일하던 여성이 쇼트커트 머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남성 우월주의자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멀리 태평양에는 웬만한 도시 하나 크기의 쓰레기 섬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가까운 도심에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컵, 비닐 따위가 굴러다닌다.

인간을 인간이 죽이고 때리는 이유는 대체로 인간 스스로가 만든 정념이나 욕망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지구를 해치는 이유는 지구가 망가져 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눈앞의 편리함만 좇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끝도 없이 해왔고,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 자명하다.

신인 작가 예소연의 SF 장편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은 위와 같은 인간적 실수를 반복해 결국에는 극한의 상황에 몰린 인간들을 다룬다. 그 인간 중 그나마 덜 인간적이어서, 괜찮은 인간 셋이 있다. ‘아샤’, ‘창’, ‘말리’. 그들은 40년 동안 벌어진 전쟁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용병이다. 그리고 할머니다. 세 할머니는 그들의 유년과 청년 시절 대부분을 전쟁을 치르며 보냈다. 전쟁은 끝났고 수많은 병사의 생과 사가 나뉘던 전장은 이제 황폐한 사막이 되었다. 바이러스가 퍼져 생물은 절멸했고 남은 인간은 트라움을 만들어 바깥세계를 격리한다. 밖으로 떠밀린 세 할머니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정’을 찾기 위해 떠돌아다닌다.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다른 인간이 아닌 고양이 ‘치즈’였다.

치즈는 그냥 고양이가 아닌 로봇 고양이고, 그들 앞에 나타난 치즈는 하나가 아닌 집단으로서 치즈다. 로봇 고양이는 인공지능으로 학습하고 학습의 과정과 결과를 다른 로봇 고양이와 공유한다. 그들은 단독자로서 치즈이기도 하지만 전체로서도 치즈이다. 로봇 고양이는 원래 기후를 정확하게 예측해 인간의 농사일을 돕는 역할을 했으나, 그들은 학습과 계산을 통해 기후위기와 재난에 속수무책일 인간의 미래를 예측한다. 로봇 고양이의 예측대로 되어버린 세계에 세 할머니는 남겨졌고, 그들은 그토록 찾았던 인간(정) 대신 비인간(치즈)을 마주한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게 분명한 인간 대신에,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면 어떨까? 그들은 인간적이지 않기에 인간과 같은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AI는 공리를 위한 학습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바둑과 체스의 수만 가지 길을 파악했듯이 인류의 역사가 만들어갈 여러 갈래의 가능성도 모조리 파악할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 감각하지 못하는 영역까지 알아버린 AI가 내리는 인간에 대한 결론은 무엇일지…. 두렵지 않다면 그것은 인간다운 거짓말이거나 인간에게나 어울리는 어리석음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AI가 인간을 다 쓸어버리는 종말을 그리지는 않는다. 다친 발목에 치즈의 데이터를 이식해 비인간적 요소를 갖게 된 창과 원래부터 비인간이었던 치즈는 어쩌면 가장 인간적으로, 소설의 말미를 이끈다. 비인간이 인간이 되는 순간은 아마도 아래와 같은 대사에서 빛을 발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간절한 기도는 분석과 예측 따위로도 그 힘을 파악하지 못해. 수백만 개의 기도가 모인 데이터를 상상해 봐.”

그렇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폭력을 행사하지만, 또 다른 우리는 전쟁 중에 삶을 기도하고, 폭력 앞에서 존엄을 지킨다. 그조차 인간다움이라 생각한다면, 인간으로서 인간을 조금은 보듬어주고 싶어진다. 인간이 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구나. 우리는 참 애쓰고 있구나, 하면서. 마지막 페이지에서 비인간인 창과 치즈는 아이(인간)를 찾으러 나선다. 우리도 다시 인간 안에 있는 진짜 인간다움을 더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막 한가운데나 동굴 깊은 곳에 있다 하더라도, 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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