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근 변호사 “제2의 고향 광주서 변호인 사명에 충실하겠다”
서울지검 명퇴 후 광주에 둥지 튼 경기도 출신 김경근 변호사
광주지검서 두 차례 근무…현재 법무법인 이우스 대표변호사
“지역민의 따뜻한 정·맛 잊을수 없어 가족들도 함께 내려왔죠”
광주지검서 두 차례 근무…현재 법무법인 이우스 대표변호사
“지역민의 따뜻한 정·맛 잊을수 없어 가족들도 함께 내려왔죠”
![]() 김경근 변호사가 명예퇴직 당시 후배 검사들이 제작해 준 동판을 뒤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18년간 입었던 법복을 벗었다. 법관이 법복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개업을 선택한 지역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김경근(50) 변호사는 지난 2022년 8월부터 광주시 동구 지산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이우스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 검사에 임용돼 서울남부지검과 제주지검, 서울중앙지검, 인천지검, 광주지검 등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제2부장을 끝으로 지난해 검사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경기도 안산 출생으로 안양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광주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 그가 광주에서 변호사를 개업하게된 이유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2008년 광주검찰청에서 근무를 했었어요. 당시 행복하고 보람된 검사생활을 했었습니다. 어느 지역보다도 외지인인 저를 따뜻하게 맞아준 곳이 광주였죠.”
김 변호사는 다섯 식구다. 당시 딸 둘은 유치원생이었는데 지금 막내인 아들이 잉태된 곳이기도 한 데다 이어 고향인 안산으로 근무지가 이어지는 인연이 있는 곳이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2020년 9월, 광주지검 공판부장을 맡아 또다시 광주로 향했다.
“부장검사로써 첫 부임지였는데 우연히 또 광주였어요. 이 정도 되면 인연이겠죠.”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마친 만큼, 서울 소재 대형 로펌에서 ‘함께 일하자’는 연락도 있었다. 그러나 때마침 법무법인 이우스 소속 변호사들이 손을 내밀었다.
“이우스 소속 사법연수원 동기들에게 안부차 연락을 했는데, 같이 해보겠느냐는 의외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변호사 개업지로 광주도 염두해 두고 있었는데 동기들 얘기를 듣고 꽂혔다고나 해야 할까요.”
그렇게 명퇴 한 달 만에 김 변호사는 광주지방변호사회에 영업 개시를 알렸다. 주변에선 고향이 광주냐는 농담도 들었다. 물론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당장 서울생활에 익숙해진 가족들을 데리고 연고도 없는 지역에 내려오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족들 모두 김 변호사의 결정을 존중해 줬다.
“아이들이 항상 아빠가 내리는 결정을 존중해 줍니다. 특히 올해 고2인 둘째 딸이 ‘가족은 함께 있어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줘 너무나 고마웠죠.”
김 변호사와 가족들 모두 광주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특히 맛의 고장 광주에선 음식과 관련해서 타지역보다 만족감이 높다. 게다가 전남의 경관은 어디에서 빠지지도 않는다.
검사에서 변호사가 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는 사고의 전환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첫 변호 당시에는 미리 써둔 의견서를 읽었다. 아무래도 첫 변호이다 보니 떨리기도 했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있었던 데다 막힘없이 말하고 싶었다.
김 변호사는 “검사로 재직했던 18년 6개월은 죄를 지은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처분을 받도록 하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죄가 있더라도 나름의 억울한 사정과 정상참작할 만한 사유를 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의뢰받은 사건에 대해 당사자가 억울함 없이, 인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변호사로서의 역할, 기본적인 사명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김경근(50) 변호사는 지난 2022년 8월부터 광주시 동구 지산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이우스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 검사에 임용돼 서울남부지검과 제주지검, 서울중앙지검, 인천지검, 광주지검 등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제2부장을 끝으로 지난해 검사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2008년 광주검찰청에서 근무를 했었어요. 당시 행복하고 보람된 검사생활을 했었습니다. 어느 지역보다도 외지인인 저를 따뜻하게 맞아준 곳이 광주였죠.”
김 변호사는 다섯 식구다. 당시 딸 둘은 유치원생이었는데 지금 막내인 아들이 잉태된 곳이기도 한 데다 이어 고향인 안산으로 근무지가 이어지는 인연이 있는 곳이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2020년 9월, 광주지검 공판부장을 맡아 또다시 광주로 향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마친 만큼, 서울 소재 대형 로펌에서 ‘함께 일하자’는 연락도 있었다. 그러나 때마침 법무법인 이우스 소속 변호사들이 손을 내밀었다.
“이우스 소속 사법연수원 동기들에게 안부차 연락을 했는데, 같이 해보겠느냐는 의외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변호사 개업지로 광주도 염두해 두고 있었는데 동기들 얘기를 듣고 꽂혔다고나 해야 할까요.”
그렇게 명퇴 한 달 만에 김 변호사는 광주지방변호사회에 영업 개시를 알렸다. 주변에선 고향이 광주냐는 농담도 들었다. 물론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당장 서울생활에 익숙해진 가족들을 데리고 연고도 없는 지역에 내려오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족들 모두 김 변호사의 결정을 존중해 줬다.
“아이들이 항상 아빠가 내리는 결정을 존중해 줍니다. 특히 올해 고2인 둘째 딸이 ‘가족은 함께 있어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줘 너무나 고마웠죠.”
김 변호사와 가족들 모두 광주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특히 맛의 고장 광주에선 음식과 관련해서 타지역보다 만족감이 높다. 게다가 전남의 경관은 어디에서 빠지지도 않는다.
검사에서 변호사가 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는 사고의 전환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첫 변호 당시에는 미리 써둔 의견서를 읽었다. 아무래도 첫 변호이다 보니 떨리기도 했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있었던 데다 막힘없이 말하고 싶었다.
김 변호사는 “검사로 재직했던 18년 6개월은 죄를 지은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처분을 받도록 하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죄가 있더라도 나름의 억울한 사정과 정상참작할 만한 사유를 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의뢰받은 사건에 대해 당사자가 억울함 없이, 인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변호사로서의 역할, 기본적인 사명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