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매장·발포 경위’ 속속 드러나는 5월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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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매장·발포 경위’ 속속 드러나는 5월의 진실
2023년 05월 17일(수) 00:00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아 80년 당시 발포 경위와 암매장 등 미완의 진실을 밝혀 줄 단서들이 잇따라 발굴됐다. 광주역 첫 집단 발포에 앞서 투입된 3공수여단 소속 계엄군들이 서울에서부터 실탄을 직접 들고 왔다는 간부 증언에 이어 해남에서는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 세 구가 나왔다.

1980년 5월 당시 3공수여단 지휘 간부였던 70대 A씨는 광주일보와 인터뷰에서 “(투입 당시) 개인별로 60발씩 쓸 수 있도록, 실탄을 중대별로 배분해 한 박스에 보관하고 다녔다”며 “이 실탄은 서울에서부터 탄통째 들고 온 것”이라고 증언했다. 3공수여단 소속 계엄군 1000여 명이 최소 6만 발이 넘는 실탄을 미리 들고 온 것은 자위권 차원의 발포였다는 신군부의 주장과 상반되는 것이다.

3공수여단은 1980년 5월 20일 밤 11시께 광주역 앞에서 최초로 집단 발포를 자행, 시민 다섯 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A씨는 3공수여단이 광주교도소에 배치됐을 때 회의 과정에서 “전남대 정문에서 싣고 온 시신 여덟 구를 교도소 북쪽 공동묘지 인근에 가매장했다”는 말을 들었다고도 증언했다.

또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지난 15일 해남읍 백야리 육군 31사단 산하 예비군 훈련장 인근 야산에서 5·18 당시 암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 세 구를 발굴했다. 5·18조사위는 계엄군으로 참여한 장병들로부터 유골을 매장했다는 증언을 확보해 발굴에 나섰다고 한다.

5·18 당시 발포 경위와 암매장, 행방불명자 등은 여전히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핵심 의혹으로 남아 있다. 계엄군이 출동 당시부터 실탄을 갖고 내려온 것은 자위권을 넘어 시민에 대한 실탄 사격을 전제로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 또한 발굴된 유해들은 5·18 당시 사망자 일부를 가매장했다가 전남 지역 군부대 등에 암매장했다는 제보들이 사실이었음을 말해 준다. 5·18조사위는 새롭게 발굴된 유골과 증언을 토대로 진상 규명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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