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말들의 풍경전, ‘보이지 않는 것들’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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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말들의 풍경전, ‘보이지 않는 것들’의 재구성
지역 추상 현주소…중진작가초대전, 3월19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김유섭·박은수·강운·이승하·정광희·서정민 작가 작품 40여점 전시
2023년 02월 15일(수) 20:25
지역 추상미술의 다채로운 면면을 만날 수 있는 광주시립미술관 ‘보이지 않는 말들의 풍경’전 모습. 김유섭 작가(왼쪽)와 박은수 작가의 작품.
장지를 입힌 작은 나무 판넬을 앞에 두고, 먹물이 묻은 붓을 든 이들의 모습이 자못 심각하다. 그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단 ‘한 글자’를 쓰는 일이다. 바로 ‘한 일(一)’이다. 사람들이 써 내려간 글자는 모두 저 마다의 사연을 담은 듯, 각기 다른 모습이다. 전시장에 걸린 280개의 ‘一’을 만나고 나면 자연스레 자신의 ‘一’을 머릿속이나 마음 속으로 그려보게 된다. 함께 전시된 영상 속 사람들 처럼. 정광희 작가가 작업실이 있는 담양의 죽녹원 등에서 만난 시민들과 함께 완성한 작품 ‘나를 긋는다’는 각자의 내면도 들여다보게 만든다.

지역 추상미술의 다채로운 면면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오는 3월 19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전시 제목 ‘보이지 않는 말들의 풍경’처럼, 직접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구상 작품과 달리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작가의 시선으로 재구성해 보여주는 작품들은 우리 각자의 시선이 한번 더 더해지면서 색다른 느낌을 준다.

‘2022 중진작가 초대전’으로 마련된 전시에는 김유섭·박은수·강운·이승하·정광희·서정민 등 6명의 작가가 초대돼 모두 4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각자의 개성이 발현된 작품들은 노동집약적인 작가의 공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생산물로 공간을 압도하는 대작들이 눈길을 끈다.

가장 먼저 만나는 작가는 김유섭이다. 회화의 근본을 찾는 실험, ‘빛’에 대한 탐구에 몰두해온 작가는 검은색과 흰색이 주조를 이룬 작업과 역동적인 원색을 화면에 쏟아부은 2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자유분방한 터치의 검은 화면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푸른 하늘이 눈길을 끌며 붉은색과 노란색 등 강렬한 원색을 과감하게 활용해 만들어낸 역동적인 조형성, 화면의 거친 붓자국과 자유로운 선도 인상적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문제점에 천착해 온 작가는 ‘인류세’ 연작도 선보이고 있다.

작품 앞 의자에 앉아 박은수 작가의 대작을 보고 있자면 ‘색의 바다’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까이서 보면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캔버스 위에 두툼하게 얹힌 재료와 어우러져 또 다른 조형성을 만들어냄을 알 수 있다. 재료에 대한 실험을 끝없이 해온 그는 종이를 마치 물감처럼 활용한다. 캔버스에 얇게 썬 신문지를 수십번 올려 쌓은 후 말리고 깎아내는 일을 반복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그는 다채로운 색감이 어우러진 색채 추상을 통해 은유적인, 자신만의 도시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진 작업을 줄곧 해온 이승하 작가는 ‘리얼리티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다. 전시작 ‘무제의 공간’ 시리즈는 반복적으로 먹물을 물에 떨어뜨린 후 먹물의 농도에 따른 변화무쌍한 움직임과 형태를 영상에 담은 작품이다. 파란색 조명과 사운드가 어우러진 영상 작품은 치유의 기운을 전한다.

구름, 마음 등의 변화를 화면에 담아온 강 운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심상을 관찰한 후 다양한 색상과 묘법의 실험을 통해 표현한 ‘마음 산책’ 시리즈를 전시중이다.

강렬한 붉은색을 기조로 조성된 전시공간에 걸린 수십여점의 ‘마음산책’ 연작은 개인의 아픔, 5·18, 코로나19 등 상처를 드러낸 후 이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전시작들은 반려 기억을 꺼내어 캔버스에 일일이 써내려가고, 이후 치유의 색으로 덧댄 결과물로 관객과 함께 치유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광희 작가 시민참여프로젝트 ‘나를 긋는다’(일부)
수묵에 대한 다양한 사유와 실험을 거듭해온 정광희 작가는 자신의 출발점인 서예의 특성을 살린 작품을 선보인다. ‘자성의 길’은 한지 조각, 먹, 젓가락을 사용한 작품으로 백토 물에 그릇을 통째로 담가 분장하는 분청사기 담금 분장 기법과 한 획을 단숨에 긋는 서예의 일 획과의 일치점에서 착안했다. 먹이 묻은 한지를 둥글에 말아 일일이 화면에 붙여 색다른 조형성을 만들어냈다.

한지로 만든 선(線)을 캔버스 위에 조형화해온 서정민 작가의 작품 앞에 선 관람객들은 한참을 머문다. 한지를 동그랗게 말고, 자르고, 일정한 크기로 토막 내 선을 만드는 일련의 작업은 마치 수련의 과정처럼 보인다. 특히 검은색과 흰색의 집합 속에서 도드라지는 붉은 색이 인상적인 ‘함성’ 시리즈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또 노란색과 검은색의 커다란 원통형 한지를 활용한 ‘선’ 시리즈는 작업 방식이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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