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비인간 시대 윤리 모색…ACC 복합전시관 레지던시 결과전
‘조화 이루며 살 수 있는가’ 탐색
이인강·비알 등 9개국 21팀 참여
내년 2월 5일까지 무료 관람
이인강·비알 등 9개국 21팀 참여
내년 2월 5일까지 무료 관람
![]() ACC 2022 레지던시 결과전이 내년 2월 5일까지 복합전시관에서 열린다. 사진은 j.h.r의 ‘물처럼 살기’. <ACC 제공> |
노자 ‘도덕경’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구절이 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라는 뜻이다. 좀더 확장해보면 물처럼 사는 인생이 좋다는 의미다. 물은 다투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낮은 곳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당장 이강현, ACC) 문화창조원 복합전시관에서 만나는 J.H.R의 ‘물처럼 살기’는 역설적으로 물처럼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돌아보게 한다. J.H.R은 설치작가 정혜련과 미디어 작가 강대운으로 구성된 팀이다. 이들의 작품 ‘물처럼 살기’가 오늘의 시점에 환기되는 것은 가뭄으로 인해 물 부족 사태가 초래되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아울러 ‘물처럼 살기’는 우리에게 인간과 자연의 본성을 일깨운다. 마치 포도송이처럼 송글송글 맺힌 물의 입자는 아름다우면서도 역동적이다. 물의 입자들은 단순한 피상적 관념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과학기술과 인간의 이성은 결코 지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묵직한 경고를 던지는 것 같다.
ACC 레지던시 결과전이 내년 2월 5일까지 복합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구 생존 가이드: 포스트 휴먼 2022’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인간과 비인간의 주체들이 공존하는 시대의 윤리를 모색하고 새로운 교감을 시도하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 레지던시는 한국의 이인강, 채종혁, 인도의 셰일리시 비알, 베네수엘라의 로드리고 마린 바리쎄뇨 등 모두 9개국 21팀(33명)이 참여했다.
전시는 주제가 말해주듯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타자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가를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인간과 기계, 비인간 주체들과의 공존과 연대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참가자들은 다가올 포스트 휴먼 시대를 위한 성찰과 실천적 대안에 머리를 맞댔다.
독일 출신 미디어아티스트 올리버 그림과 러시아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다한으로 구성된 오덧아의 ‘고스트 유토피아’는 두 개의 다른 세계로 구성된 가상현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제목이 강렬하고 상징적이다. 작가들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로 양분되는 서로 다른 세계를 가상현실로 재해석했다.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 우크라이나 난민들, 북한 이탈민 등처럼 전쟁과 민주항쟁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모티브가 됐다. 전쟁, 독재, 탄압이 엿보이는 사진을 기반으로 한 3D 환경이 구축된 것. 인간의 존엄성, 윤리, 책임 과 같은 규범이 무너진 세계가 초래하는 악영향을 표현한 것이다. 또 하나의 세계는 국가의 제도로부터 해방된 가상의 ‘영혼’, ‘유령’을 상정한다. 삽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유령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상상의 섬을 가상현실로 구현했다.
룸베라-씽의 ‘부유하는 기억’은 시적이며 감성적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의 모티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모티브는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리핀 어느 군도에서 발생한 콜레라의 원인으로 밝혀진 ‘검은 개’ 설화와 관련돼 있다. 아울러 필리핀-미국 전쟁으로 죽은 20만 명의 사망자를 냈던 참상과도 맞물려 있다.
‘부유하는 기억’은 콜레라와 전쟁으로 사망자들을 집단으로 매장했던 필리핀 바탕가스 ‘타알’ 지역의 호수를 카메라가 보여준다. 작가는 지역 주민과 함께 인근 숲에서 나무 한 그루를 벌목해 대나무 뗏목 위에 세웠다. 뗏목 위에 세워진 나무는 필리핀 설화에 나오는 인간과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혼과의 동맹을 상징한다.
한편 이에 앞서 레지던시 작가들은 지난 16일 연구 결과 발표회인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했다. ‘포스트 휴먼 몸 상상하기’를 주제로 예술극장에서 열렸으며 동아대 임소연 교수가 ‘태초에 살아 있었다: 사이보그 되기의 물질성에 대하여’를 주제로 기조발제를 했다. 이어 연구자 유승아가 ‘사이보그적 존재들을 통해 본 포스트 휴먼의 몸 짓기’를 발표했으며 창작지원 프로그램 참여자인 이인강, 우링샹, 이샘이 ‘몸, 기술, 여성’을 주제로 연구 과제물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관람은 무료. 보다 자세한 내용은 ACC 누리집 참조.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당장 이강현, ACC) 문화창조원 복합전시관에서 만나는 J.H.R의 ‘물처럼 살기’는 역설적으로 물처럼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돌아보게 한다. J.H.R은 설치작가 정혜련과 미디어 작가 강대운으로 구성된 팀이다. 이들의 작품 ‘물처럼 살기’가 오늘의 시점에 환기되는 것은 가뭄으로 인해 물 부족 사태가 초래되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지구 생존 가이드: 포스트 휴먼 2022’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인간과 비인간의 주체들이 공존하는 시대의 윤리를 모색하고 새로운 교감을 시도하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 레지던시는 한국의 이인강, 채종혁, 인도의 셰일리시 비알, 베네수엘라의 로드리고 마린 바리쎄뇨 등 모두 9개국 21팀(33명)이 참여했다.
전시는 주제가 말해주듯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타자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가를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인간과 기계, 비인간 주체들과의 공존과 연대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참가자들은 다가올 포스트 휴먼 시대를 위한 성찰과 실천적 대안에 머리를 맞댔다.
독일 출신 미디어아티스트 올리버 그림과 러시아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다한으로 구성된 오덧아의 ‘고스트 유토피아’는 두 개의 다른 세계로 구성된 가상현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제목이 강렬하고 상징적이다. 작가들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로 양분되는 서로 다른 세계를 가상현실로 재해석했다.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 우크라이나 난민들, 북한 이탈민 등처럼 전쟁과 민주항쟁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모티브가 됐다. 전쟁, 독재, 탄압이 엿보이는 사진을 기반으로 한 3D 환경이 구축된 것. 인간의 존엄성, 윤리, 책임 과 같은 규범이 무너진 세계가 초래하는 악영향을 표현한 것이다. 또 하나의 세계는 국가의 제도로부터 해방된 가상의 ‘영혼’, ‘유령’을 상정한다. 삽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유령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상상의 섬을 가상현실로 구현했다.
룸베라-씽의 ‘부유하는 기억’은 시적이며 감성적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의 모티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모티브는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리핀 어느 군도에서 발생한 콜레라의 원인으로 밝혀진 ‘검은 개’ 설화와 관련돼 있다. 아울러 필리핀-미국 전쟁으로 죽은 20만 명의 사망자를 냈던 참상과도 맞물려 있다.
‘부유하는 기억’은 콜레라와 전쟁으로 사망자들을 집단으로 매장했던 필리핀 바탕가스 ‘타알’ 지역의 호수를 카메라가 보여준다. 작가는 지역 주민과 함께 인근 숲에서 나무 한 그루를 벌목해 대나무 뗏목 위에 세웠다. 뗏목 위에 세워진 나무는 필리핀 설화에 나오는 인간과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혼과의 동맹을 상징한다.
한편 이에 앞서 레지던시 작가들은 지난 16일 연구 결과 발표회인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했다. ‘포스트 휴먼 몸 상상하기’를 주제로 예술극장에서 열렸으며 동아대 임소연 교수가 ‘태초에 살아 있었다: 사이보그 되기의 물질성에 대하여’를 주제로 기조발제를 했다. 이어 연구자 유승아가 ‘사이보그적 존재들을 통해 본 포스트 휴먼의 몸 짓기’를 발표했으며 창작지원 프로그램 참여자인 이인강, 우링샹, 이샘이 ‘몸, 기술, 여성’을 주제로 연구 과제물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관람은 무료. 보다 자세한 내용은 ACC 누리집 참조.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