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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시대
2021년 03월 30일(화) 07:00
김다인 취업준비생
얼마 전 영화를 보던 중 마스크 없이 모여 있는 장면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이내 ‘아, 저 때는 코로나가 없었구나’ 하고 실소가 터져 나왔다. 더불어 코로나가 일상 속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사실도 다시금 와닿았다. 지난해 TV를 통해 접했던 언론 보도 중 무심코 흘려 넘겼던 대목이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안의 중대함을 체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마스크 없이, 누군가와의 만남이 자유로웠던 일상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어느새 1년이다. 코로나19 때문에 1년간 지독하게 모두가 고통받았다. 심지어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고, 누군가는 직장도 잃었다.

특히 서로 간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 가장 뼈아프다. 불신, 서로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우리는 현재 불신의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본다. 일상 속에서 지키지 못하는 약속들이 늘어났다. “밥 한번 먹자”에서 “코로나 끝나면 한번 보자”라고 길어진 인사말이 익숙하다. 코로나 이후 세 차례의 명절을 보냈다.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으로 가족과 만나는 것마저 자제해야 했다. 나를 의심하고 상대방을 조심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바이러스가 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쩌면 기정사실화해야 했다. ‘씻지 않은 손’과 ‘가리지 않은 입’은 잠재적 코로나 바이러스가 되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불신은 마스크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비극이다. 불신은 의심으로 변했고 의심은 “다음에”로 변했다.

“다음에”가 가져온 나비효과는 컸다. 얼마 전 논문을 위해 학교에 방문했다. 오랜만에 수업이 끝나면 매일같이 동기들과 걸었던 학교 앞 골목에 들렀다. 자주 갔던 가게들이 어느새 문을 닫고 사라졌다. 온라인 강의로 학생들이 줄자, 대학가는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렸단다. 그로 인해 임대 스티커를 붙인 텅 빈 가게만 남게 됐다. 문득 빈 가게 유리창에 비친 필자의 모습이 보였다. 마스크를 낀 채 친구와도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이 피부로 와 닿는 순간이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입는 피해가 막대하다. 대학가를 비롯해 식당, 유흥업소, 헬스장 등 우리 삶과 밀접하게 닿아있던 가게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나라에서는 어느덧 4차 재난지원금까지 지원하게 되면서 곳간이 바닥난 상태이고 20~30대 청년 취업난까지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국민들의 고통이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말이 있다. ‘젊어서 괜찮겠지’. 서로에 대한 위로가 주는 안심은 순간에 불과하다. 불신은 서로 간의 정(情)을 저버리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종식을 위해서는 ‘불신(不信)’이 필수적이다. 지금껏 불신은 부정적 단어로만 사용돼 왔다. 하지만 위드 코로나 시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무증상 감염이라는 변수를 고려하면 내 앞에 마주한 타인이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언택트와 비대면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꼭 필요하지 않은 만남을 줄이고 다음을 기약하며, 혹시 모를 감염을 예방해야 한다. 정부의 방역 지침을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이 백 번의 불평보다 빠르고 확실하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봤던 공익 광고가 기억에 남는다. “당신의 확신이 수많은 확진을 멈췄습니다”라는 나레이션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에 대한 의심과 서로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많은 확산을 멈추게 했을까. 코로나 블루로 인해 우울감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삶의 활력을 잃고 집에만 있는 하루가 우울하다면 그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집콕’을 하며 오늘 내가 지켜낸 확신은 그 어떤 것보다 값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