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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리지 않는 ‘낮은 자세’로 맞이하다
(9) 통영 윤이상 기념공원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
2020년 07월 27일(월) 00:00
유명 건축가 민현식 교수가 설계한 윤이상 기념공원에는 기념관, 베를린 하우스, 야외공연장이 자리하고 있다. 윤이상 기념관 전경.
‘집은 돌아오는 곳이다/ 배를 타고 지구 반대편까지 떠났다가 돌아오고/ 죽어서도 돌아오는 곳이 집이다/(중략) 어제의 집이 있어 오늘의 집이 있듯/오늘의 집이 있어 내일의 집이 있을 것이니/여기 영원히 살아있을 윤이상의 집이 있다/이 집에 20세기 최고의 음악가/윤이상 선생이 살고 있다’(시인 정일근의 ‘이집에 윤이상 선생이 살고 있다’중에서)



친자연적인 컨셉으로 설계한 야외공연장.
경남 통영시의 도심에 자리한 윤이상 기념관으로 들어서자 입구에 새겨진 시 한편이 눈에 띈다. ‘이집에 윤이상 선생이 살고 있다’. 그의 기념관인 만큼 당연한 말이지만 왠지 가슴 한켠이 먹먹하다.

그도그럴것이 불과 3년전까지만 해도 윤이상(1917~1995)이라는 ‘문패’를 달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그의 생가터인 도천동 일대에 기념공원이 조성됐지만 이념논란으로 ‘윤이상’ 이라는 이름 석자를 새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1967년 동백림(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복역하다 특별석방후 독일로 내?기듯 건너가 1995년 세상을 떠났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거장을 배출한 고향이지만 그의 이름 대신 지명을 딴 ‘도천테마파크’로 지난 2010년 3월 문을 열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7월 5일 세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독일 방문길에 윤이상 선생의 묘를 참배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됐다. 당시 김 여사는 통영의 동백나무 한 그루를 공수해 베를린 공원묘지에 있는 그의 묘비 앞에 식재한 후 직접 참배했다. 이를 계기로 통영시와 시의회가 ‘도천테마파크기념관 설치 및 관리운영 조례일부 개정안’을 만장 일치로 의결하고 ‘윤이상 기념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윤이상 이란 이름을 되찾기 까지 무려 7년이나 걸린 셈이다.

고 윤이상 선생의 흉상
기념관의 로비를 지나 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거대한 윤이상 흉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가로 54cm, 세로 49cm, 높이 83cm에 무게가 85kg인 흉상은 전시관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머플러를 두른 선생의 표정이 평탄치 않은 삶을 보여주듯 어둡다. 몇발짝 발걸음을 옮기자 거장의 예술혼이 담긴 첼로가 눈에 들어온다. 생전 선생이 연주하던 것으로 어디선가 묵직한 선율이 들리는 듯 하다. 전시장 곳곳에는 음악인으로서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친필악보 등 희귀 자료 뿐만 아니라 유학시절 사용했던 여권, 옷, 중절모, 작은 태극기 등 그의 체취가 묻어있는 유품 170여점이 진열돼 있다.

어린 시절, 그가 접했던 통영의 푸른 바다는 음악적 영감을 키워준 보고였다. 그는 ‘생의 한가운데’로 유명한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에서 자신의 음악은 고향에서 출발했다고 회고했다. 긴 여운을 남기는 뱃고동과 갈매기 울음, 귓가에 맴도는 파도소리는 남달랐던 그의 음악적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생전 윤이상 선생이 연주하던 첼로.
윤이상 선생이 음악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1959년 독일에서 ‘일곱 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하면서부터. 동아시아의 음악 요소를 서양 음악에 접목시킨 그의 작품은 유럽 음악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그를 세계적인 음악가의 반열에 올라서게 하는 계기가 됐다. 전시관에는 ‘현대를 움직인 5명의 작곡가’, ‘20세기 100년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 등 그의 화려한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망라돼 있다. 실제로 그는 1971년 킬 문화상, 1988년 독일 연방공화국 대 공로훈장, 1992년 함부르크 아카데미 플라케테상 수상 등 세계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사실 ‘동백림’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앞날은 탄탄대로였다. 전통 아악의 기법과 특색을 오케스트라에 접목시킨 ‘예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어가던 1967년, 그의 인생을 하루아침에 뒤바꾼 일이 벌어졌다. 대학교수, 유학생, 예술인 등이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대남적화 공작을 벌였다는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누명을 쓰고 서울로 강제 연행된 것이다. 이에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같은 당대 최고의 음악인이 한국 정부에 탄원한 덕분에 그는 투옥 2년 만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나게 됐다. 하지만 동백림 사건은 그에게 지울수 없는 상처로 남았고 내쫓기듯 다시 유럽으로 떠났다.

베를린 하우스 전경.
전시관을 나오면 맞은편에 또 다른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베를린 하우스’다. 지난 2019년 생활 SOC 작은 도서관 조성지원 공모 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된 음악 전문 작은 도서관이다. 총 1억 4000만 원을 들여 지난해 문을 연 베를린하우스는 독일 베를린의 윤이상 하우스를 4분의 1 크기(78.69㎡)로 축소해 건립했다. 2층 규모로 지어진 베를린하우스에는 주로 윤이상 선생의 유품들이 전시돼 있지만 향후 도서관 개념의 복합문화시설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1층은 현재 음악 관련 디지털 도서관으로 조성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중이다.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2층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베를린 자택에서 사용했던 통영 소목장(3층 장롱)이 고풍스런 자태를 드러낸다. 1995년 타계한 윤이상 선생의 베를린 자택에 남아 있던 유품 148종 412점 가운데 들어 있던 것으로 부친이 그에게 보내줬다고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선생의 서재와 응접실을 그대로 재현해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게 한 점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소파와 치열한 예술가의 열정이 녹아 있는 책상, 그리고 부인이 직접 만든 생활도자기들이 전시돼 있다.

베를린 하우스에서 빠져 나오면 다양한 꽃과 나무들로 조성된 공원이 펼쳐진다. 원래 도천테마파크로 불렸던 이곳은 윤이상 기념공원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시민들의 쉼터로 변신했다. 윤이상 기념관, 베를린 하우스, 야외공연장이 어우러진 윤이상 기념공원은 독특한 건축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유명 건축가인 민현식 교수(전 한예종 교수, 현 경남도 총괄건축가)가 설계한 이곳은 비대칭의 기념관과 경사광장으로 지어진 야외공연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심에 위치한 장소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최대한 시각적으로 거슬리지 않는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특히 야외 공연장인 경사 광장 벽면에는 사각형 홈을 판 후 조명을 설치했고 윤이상 선생이 베를린 자택 인근 호수를 바라보며 향수를 달랬다는 점에 착안해 통영 앞바다를 상징하는 연못을 배치했다. 지난 2010년 전국의 공공시설물을 대상으로 발주기관의 노력이 가장 돋보인 건축물에 수여되는 ‘좋은 건설 발주자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통영=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