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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카페?…고정관념 깬 주민의 쉼터
(7) 신안군 압해읍 종합복지회관
2020년 05월 18일(월) 00:00
신안군 압해읍 복지회관의 내부 모습. 유현준 건축가는 공중 목욕탕이 지닌 공동체 특성과 개인적 휴식 공간의 의미를 반영해 설계했다. <사진 제공·유현준 건축사무소 ⓒ박영채.>
지난 2012년 개봉된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는 독특한 장면이 등장한다. 고(故) 정기용 건축가(1945~2011)가 자신이 설계한 무주군의 공중목욕탕에서 옷을 벗고 목욕을 하는 ‘씬’이다. 마을 주민들이 목욕탕을 이용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는지 직접 몸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도 그럴것이 공중목욕탕은 주민들의 숙원 가운데 하나였다. 무주군이 안성면에 마을 회관 건립을 추진하자 ‘이왕이면 목욕탕으로 지어달라’고 해서 건립됐다. 사람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한 그의 건축 철학 덕분일까. 무주 공중목욕탕은 2001년 개관 이후 주민들의 일상과 뗄 수 없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신안군에도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공중목욕탕이 성업(?)중이다. 압해읍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압해읍 종합복지회관’(이하 압해읍 복지회관·신안군 압해읍 학교리 588-7)이다.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식당과 목욕탕, 중증장애인자립생활 지원센터가 공존하고 있는 다목적 건물이다.

5월의 어느날,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따라 목적지에 도착하니 근사한 3층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얼핏 보면 현대 미술관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 같다. 특히 파란색 하늘 아래서 빛나는 화이트 톤의 색감 대비는 강렬하다. 작은 시골 마을에 이런 멋진 건물이 있다니. 직접 눈으로 봐도 믿기지 않을 만큼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건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부터 오래된 가옥, 밭 작물까지 모던한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절제된 외관은 탄성을 자아낸다. 아니나 다를까. 매력적인 건물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2~3년 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 ‘인생 샷’을 건질 수 있는 곳으로 소문이 나면서 종종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다.

압해읍 복지회관은 지난 2017년 tVN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시즌 2에 소개된 후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출연자인 유희열과 유현준 건축가가 대화를 나누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압해도 목욕탕을 언급한 후 부터다. 유 건축가가 설계한 목욕탕을 둘러 본 유희열이 “미니멀한 건물이 너무 예쁜데 편집되는 바람에 정작 본방송에 나가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고 말하자 시청자들 사이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다.

화이트 톤의 모던한 디자인이 인상적인 신안군 압해읍 복지회관 전경.
지난 2016년 11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압해읍 복지회관은 스타 건축가 유현준 교수(홍익대 건축학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연면적 1436.47㎡, 건축면적 604,07㎡의 지상 3층 규모로 건립된 복지회관은 1층 회의실과 경로식당, 2층 공중목욕탕, 3층 중증장애인 생활지원센터·노인회쉼터로 꾸며졌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쉼터를 제공하기 위해 추진됐다.

그렇다면 유현준 건축가는 어떻게 신안과 인연을 맺게 됐을까. 여기에는 유 건축가의 남다른 ‘건축 이력’이 큰 몫을 했다. 지난 2008년 부터 홍익대와 충남 공주시는 디자인협약을 맺고 5년간 공주일대에 마을회관 5곳을 건립하는 공공 프로젝트를 실시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유 건축가는 마을회관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프로젝트에 앞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마을회관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어떤 날에는 마을 주민들의 잔치가 열리는 마당이 되는 가 하면, 때론 적적함을 달래주는 사랑방으로, 무더운 날에는 냉방비 걱정 없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쉼터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능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지닌 건물이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대부분의 마을회관은 칙칙한 모습인 데다 구조적으로도 취약해 공공 건축물로 미흡한 점이 많았다. 유 건축가는 지역의 날씨와 지형에 맞는 기능성과 디자인을 접목한 설계로 마을회관의 고정관념을 깨는 건물을 선보였다.

홍익대의 프로젝트가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게 되자 2014년 박우량 신안군수로부터 그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마침 신안군은 2개읍과 12개의 면으로 구성된 지리적인 여건으로 타 지자체와 달리 지난 2006년부터 각 읍면에 1개의 복지회관을 건립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이미 11개의 복지회관이 건립된 후 압해읍 공사만을 남기고 있는 상황에서 박 군수가 유 건축가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박 군수의 적극적인 러브콜에 깊은 인상을 받은 유 건축가는 신안으로 내려와 복지회관 후보지 2곳을 둘러 본 후 압해읍사무소의 뒷편에 위치한 땅을 낙점했다. 압해도의 아름다운 경관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압해대교 개통이후 껑충 뛰어 오른 지가가 문제였다. 다행히 복지회관의 비전에 대해 군의회와 지역주민들이 공감하면서 27억 원의 예산을 확보해 탄력을 받게 됐다.

복지회관 2층에서 바라 보는 압해도의 풍광이 한폭의 그림 같다.
‘물, 중정( 中庭), 그리고 명상’. 유 건축가가 압해읍 복지회관을 설계할 때 고려한 키워드다. 여러 기능 가운데 목욕탕에 주목한 그는 온수가 잘 나오지 않는 섬 주민들에게 목욕탕은 공동체의 중심일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내밀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유 건축가는 “마치 우리 모두가 엄마의 뱃속인 물속에서 태어났듯이 목욕은 잠시나마 그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이라며 “혼자서 바깥 경치를 즐기는 시간 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공간이 더 적합하다고 여겨 욕실내의 모든 창문을 콘크리트 블록으로 막고 최소한의 필터로 햇빛이 들어오도록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또한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건물은 ‘부침개를 할 수 있는 마당’이 필요하다”는 그는 1층의 강당~수(水)공간~식당~마당이 하나로 엮어지도록 ‘ㅁ’자 형태의 중정을 도입했다. 이 때문에 건물 안에 들어서면 3층의 여러 시설들이 하나의 공간으로 수렴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1층 한 가운데 배치된 여러 개의 계단과 그 사이에 흐르는 물이 어우러져 신성한 사원에 들어 온 듯한 착각마저 들게한다. 바깥에서 보면 흰색의 직사각형 건물에 몇몇 구멍이 있는 평범한 모습이지만 내부에는 구멍을 통해 들어 오는 빛과 그림자로 인해 ‘드라마틱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건축가가 의도적으로 기획한 ‘반전의 공간’ 효과이다. 압해읍 복지회관은 지난 2016년 국토교통부와 (사)한국문화공간 건축학회가 수여하는 ‘대한민국 공공건축상’(국토부장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압해읍 복지회관은 ‘1섬 1미술관’을 내건 신안군의 아트 프로젝트와도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섬의 지리적 환경을 반영한 건축물의 가치가 주목받으면서 지난 2019년 신안군은 유인도 14곳에 미술관을 건립하는 ‘1도(島) 1뮤지엄’ 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것. 그중에서도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참여하는 자은도의 ‘임피니또 미술관’은 150억 원 규모의 명품 건축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이 ‘아트 아일랜드’로 변신하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신안=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