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이 국가와 선사인 청해진해운으로부터 치료비 등을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 고(故) 유병언 전 세모그룹 일가는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에서 국가가 지출한 비용 중 70%를 부담하게 됐다.

광주고법 민사2부(고법판사 유헌종, 류봉근, 김두희)는 “박모(2019년 사망 당시 66세)씨가 국가와 청해진해운, 한국해운조합, 우린 통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9일 밝혔다.

1심 재판부는 위자료를 4000만원으로 산정하고 박씨가 제출한 과거 치료비 내역 2100여만원 중 일부 등을 토대로 총 6400여만원을 배상할 것을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박씨의 위자료를 5000만원으로 상향했으며, 재판 과정에서 박씨가 사망함에 따라 향후 치료비 등을 재산정해 총 6900여만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법원은 “해경이 퇴선 유도조치를 소홀히 하는 등 업무상 과실과 청해진 해운 등이 화물 과적과 고박 불량의 상태로 세월호를 출항시키고, 선장과 선원들이 구호 조치 없이 퇴선한 위법행위가 박씨의 신체적·정신적 상해를 초래했다”면서도 “다만 국가 과실 부분은 사고 유발이 아닌 구조 과정에서만 인정되는 만큼 사고 중 박씨가 입은 신체 상해에는 책임이 없고, 정신적 피해만 일부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25t화물차 기사였던 박씨는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구조됐으나 배가 갑자기 기울면서 허리를 다치고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 생업에 종사하지 못하고 수술·약물 치료를 받았으며, 담도암 판정을 받은 지 수개월만인 지난해 11월 사망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동연)는 지난 17일 국가가 유 회장 일가 등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자녀인 유섬나(53)·상나(51)·혁기(47) 남매에게 총 1700여 억원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국가가 지출한 비용 중 70%에 해당하는 액수로, 국가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구상금을 청구한 사건 가운데 최초의 승소 사례다. 국가는 세월호 사건의 수습 등 과정에서 세월호 특별법에 따른 손해배상금 등 비용을 지출한 뒤, 사고에 책임이 있는 유 전 회장 자녀들과 청해진해운 주주사 등을 상대로 4213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국가는 유 전 회장의 장남 유대균(49)에 대해서도 구상금을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대균씨의 경우 적법하게 상속 포기가 이뤄졌다고 보고 기각했다.

유 전 회장을 세월호 참사의 ‘원인제공자’로 판단한 재판부는 유 전 회장이 책임져야 할 범위를 수색·구조를 위한 유류비와 조명탄비, 인건비, 피해자 배상금, 장례비, 치료비 등 총 3723억원으로 봤다.

다만 국정조사나 세월호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운영 등 국가의 작용에 관련한 비용과 공무원 수당, 추모사업 관련 비용 등은 구상권의 범위에서 제외했다.

재판부는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비용 모두를 원인제공자에게 구상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이 국가에 부여한 국민 생명 보호 의무 등을 모두 전가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3723억원 중에서도 유 전 회장이 책임질 부분은 70%인 2606억원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가 사무를 맡은 해경의 부실 구조, 한국해운조합 등의 부실 관리 등에도 사고 원인이 있다 보고 유 전 회장의 책임을 70%로, 국가의 책임을 25%로 정한 것이다. 나머지 5%는 화물 고박 업무를 담당한 회사에게 책임을 물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숨진 유 전 회장이 물어야 할 2606억원을 상속인인 섬나·상나·혁기씨 남매가 3분의 1씩 부담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며, 다만 선주배상책임공제계약 등에 따라 먼저 공제된 부분을 제외하고 실제 지급할 금액은 1700여 억원으로 정했다.

/박진표 기자 luck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