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발포로 금남로에 꽃잎처럼 스러진 시민군들. 손발이 묶인 채 체포돼 전남도청 광장에서 시신과 함께 뒤엉킨 부상자들. 쓰러진 시민에게 마구잡이로 곤봉질하는 계엄군들. 겁에 질린 채 붙잡힌 고교생과 그 사진 아래 적힌 ‘폭도’라는 두 글자. 39년 만에 공개된 ‘5월의 기록’에는 군홧발에 짓밟힌 광주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은 그제 군사안보지원사령부(옛 국군보안사령부)가 국가기록원에 이관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사진첩 13권을 공개했다. 사진첩에는 당시 군이 정보 활동 등을 목적으로 채증하거나 현장 취재 기자들에게 압수한 기록 사진 1769매가 담겨 있다. 그 안에는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선무 활동을 하는 장면과 사살된 희생자들의 참혹한 모습 등이 다수 포함됐다.

특히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기 한 시간 전인 80년 5월 21일 12시 금남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과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적힌 미니버스를 타고 이동하거나 무기를 나눠 갖는 시민군 등 항쟁 모습도 생생하게 담겼다. 무릎을 꿇은 시민군 앞에 총과 각목, 가위를 진열한 채 촬영하는 등 신군부의 만행을 정당화하고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간 흔적도 사진첩 곳곳에 남아 있었다. 사진 속 시민들은 사회 혼란 조성자, 시위 난동자, 무장 폭도 등으로 표현됐다.

이들 사진에는 당시 계엄군의 진압 활동과 시민들의 항쟁 모습이 일자별로 세밀하게 명시돼 있다고 한다. 보안사가 역사 왜곡에 활용했지만 역으로 5·18 진상 규명을 위한 사료로서도 가치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사진첩은 5번부터 17번까지로 1~4번은 누락돼 있어 은폐되거나 폐기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나머지 사진첩의 행방도 조속히 밝혀내 그날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