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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예향 초대석 >> 외국영화 번역가 이미도
“창의적 상상력 키우는 가장 위대한 무기는 언어”
26년간 한길…520여편 외화 번역
영화 번역하다 창작자로…詩도 집필
커피숍은 서재·집무실이자 놀이터
독서 많이 해 독창적 언어력 키워야
스마트폰은 신문 ‘사색’ 이길수 없어
2019년 10월 01일(화) 04:50
대문자 A 3개로 이뤄지는 ‘성공 피라미드’.
외국영화(外畵) 번역가 이미도(58)는 1993년 폴란드 출신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세 가지색 시리즈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인 ‘세 가지 색:블루(Trois Couleurs Bleu)’를 시작으로 26년 동안 520여편의 영화자막을 번역했다. ‘굿 윌 헌팅과’ ‘반지의 제왕’, ‘쿵푸 팬더’, ‘슈렉’, ‘글래디에이터’(Gladiator)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또한 그는 영화를 바탕으로 삼아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강연을 하고, 시를 짓는다. 그에게는 모두 ‘창조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즐거운 ‘놀이’이다. 최근 ‘이미도의 언어상영관’을 펴낸 그를 만나 영화번역과 언어예찬에 대해 들었다.



◇커피숍은 소로의 숲같은 공간=‘월든’(Walden)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I took a walk in the woods and came out taller than the trees’(숲을 산책하고 왔더니 내 키가 나무보다 커졌다)라고 했는데, 매사추세추주(州) 콩코드라는 도시의 깊은 산속 호숫가 3평짜리 오두막집 주변 숲이 그의 놀이터이고 사색공간이잖아요. 저는 반대로 커피숍이 그런 ‘숲’의 역할을 하는 거예요.”

외화번역가이자 작가인 이미도는 매일 오전 노트북과 신문을 챙겨 집 근처 ‘스타벅스’로 향한다. 그에게 그곳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만이 아니다. 이곳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영화자막을 번역하고, 글을 쓰고, 책과 신문을 읽는다. 개인서재처럼, 놀이터처럼, 집무실처럼 활용한다.

커피숍에서 이뤄지는 그의 많은 ‘놀이’ 가운데 기자의 관심을 끈 것은 온라인 신문이 아닌 종이신문을 꼼꼼히 보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종이신문을 열렬히 소비하는 독자중 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20여 년째 종이신문을 1면부터 끝면까지 꼼꼼하게 읽고, 온라인으로 영자지를 읽고 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것은 ‘검색’이고, 종이신문을 읽는 것은 ‘사색’이라고 말한다. 자작시 ‘해보나마나’에서 ‘검색은 사색에게/ 얕은 사고는 깊은 사고에게 백전백패’라고 썼다.

그는 신문을 읽을 때 항상 펜과 A4용지를 곁에 둔다. 신문을 읽다보면 아이디어가 ‘반짝’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걸 놓치지 않고 메모해둔다. 신문안에 있는 아이디어와 그의 아이디어가 결합할 때 뭔가 새로운 결과가 나온다. 그는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사과를 맞바꾸면 내 손에 사과가 한 개뿐 이지만 아이디어를 맞바꾸면 각각 아이디어가 두 개’라는 말로 설명을 한다. 영화번역에서 시작한 그의 발걸음은 언어에 바탕한 ‘창의력’(Creativity)을 무기삼아 글쓰기와 책 만들기, 강연하기, 시쓰기 등으로 나아갔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520여 편 영화번역=그의 영화인생은 1993년 폴란드 출신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세 가지색 시리즈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인 ‘세 가지 색:블루’(Trois Couleurs Bleu)에서 시작됐다. 미군 통역관이었던 아버지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하고, 영어를 공부했던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도전이었다. 이후 26년간 한길을 걸으며 지금까지 모두 520여 편의 외국영화를 번역해왔다. 그는 영화를 번역하는 일을 ‘장미꽃밭에서 맨발로 춤추기’라고 말한다.

“장미꽃밭에서 춤을 추니 얼마나 행복하고 즐겁겠어요. 그런데 장미에는 가시가 있어 찔릴 수 있잖아요. 재미있게 즐기되 작업이 창의성을 요구하니까 원작을 훼손하지 않도록 그만큼 신경 쓰고 공을 들여야 한다는 거잖아요. 이윤기 작가가 ‘번역은 밴 아이를 낳는 행위, 창작은 안 밴 아이를 낳는 행위’라고 하셨어요. 그만큼 어렵다는 거죠.”

그는 오랫동안 영화번역 일을 해오면서 항상 창작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었다. 이번에 출간한 ‘이미도의 언어상영관’은 그러한 ‘창작욕구’의 산물이다. 자작시 25편과 영화 글, 40대 일러스트레이터 헌즈의 서정적인 삽화가 어우러진 시서화집이다.

그는 ‘두 줄 16자 이내’에 대사를 압축하는 영화 자막번역 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 2016년 늦가을에 순천만 끝자락 와온을 다녀온 후 서울 무교동 한 커피숍에서 “…‘와’가 ‘온’을 끌어안을 때 비로소 붉다/ 해넘이 타오름처럼 붉다”라고 노래하는 시 ‘와온’(臥溫)을 썼다. 영화 번역일과 책 쓰는 일을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하다 보니 여행을 많이 못했다 싶어 떠난 문학기행이었다. 어떠한 매력이 있어서 지명에 ‘엎드릴 와’(臥)와 ‘따뜻할 온’(溫) 자를 쓰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그 이후 가슴에 와서 꽂히는 ‘명사’단어에 천착하면서 상상력으로 그림을 그리듯 한편, 한편의 시를 썼다. 시 ‘정한수’와 ‘까치발’을 마음속에서 끄집어 올린 단어는 ‘가슴속 등대’와 ‘까치발’이었다.

“가슴속/ 등대 꽃을 켜려고/ 어머니는 / 새벽마다 물이 되신다.”(<정한수> 전문)

“까치야/ 너는 알까/ 아버지는 직장에서/ 왜/ 구두 뒤꿈치가 닳지 않는지.”(<까치발> 전문)

◇영화는 기본적으로 인생이야기=그는 영화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 영화속 명대사 한마디는 어느 고전 못지않게 독자들을 위로하고, 열정을 일깨운다. 애니메이션 영화 ‘쿵푸 팬더’에서 거북이 사부(우그웨이)는 무술연마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주인공 포에게 말한다.

“어제는 과거다. 내일은 미스터리다. 오늘은 선물이다.(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과거의 아픔은 잊고, 내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오늘 매순간을 소중하게 아끼며 재미있게 살아라’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모든 영화의 주제를 한단어로 압축하면 ‘변화’(Change)이다. 그 역시 영화를 통해 번역자를 뛰어넘어 창의적인 글을 쓰는 창작자로 ‘변화’했다.

작가는 어느날 커피숍에서 문득 피라미드를 떠올렸다. 그리고 내프킨에 A 3개를 대문자로 써서 피라미드를 그려보았다. 나란한 두 개의 A위에 A를 올린 모양이었다. 3A는 재미(Amusement)와 재능(Ability), 경험축적(Accumulation)을 상징한다. 재미와 재능, 경험축적의 피라미드를 쌓으면 자기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성공 피라미드’이다.

“호기심과 상상력, 창의력을 키우고 즐길 때 쓰는 가장 위대한 무기가 무엇일까요?”

그가 대중강연을 할 때 객석에 던지는 질문이다. 청중들은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가 기대하는 답은 ‘언어’이다. 호기심과 상상력, 창의력, 혁신력은 인간의 위대한 무기이다. 그의 강연주제는 ‘창의적 상상력’이다.

“듣도 보도 못한 독창적인, 유니크한, 오리지널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창조적 상상력’인 거예요. 제임스 카메룬 감독은 고졸이지만 인도 신들의 계보를 정리해놓은 고대 인도 서사시 ‘마하바라타’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습니다. 그 책을 섭렵하며 키운 ‘창조적 상상력’의 결과물이 영화 ‘아바타’입니다.”

그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창조적 상상력의 산물’이라면서 창의적인 상상을 하려면 ‘언어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경우처럼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간 ‘이미도의 언어상영관’에서 ‘초등 1학년부터 고등 3학년까지 12년간 1교시 수업전 10분 필사하기’라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 역시 독서를 통해 청년기의 고통을 극복했다. 그가 찾은 오아시스는 소설가 이병주(1921~1992)의 소설들이었다. 고2에 집을 나와 방황하던 시절 ‘소설 알렉산드리아’ 등 그의 작품을 모조리 찾아 읽으며 용기를 찾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창의적인 ‘놀이’를 하며 살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바로 책읽기였다. 그를 키운게 ‘8할이 영화’라고 한다면 그 안에 독서와 종이신문 읽기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