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흥행에 참패했다고 성급하게 말하는 영화 ‘남한산성’을 두 번 관람했다. 한 번은 팬으로서 이병헌 연기를 보기 위해서였고, 또 한 번은 김훈 작가의 원작소설을 뒤늦게 읽고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영화의 3요소나 시나리오의 중요 요소가 무엇인지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적어도 영화 ‘남한산성’의 압권은 주화파와 척화파로 대표되는 두 연기자가 쏟아내는 대사였던 것 같다. 두 인물의 처절하지만 냉혹하고, 철학적이면서도 시적인 말들에 깊이 탄식하고 오래 감탄했다.

2007년 초판을 발간한 지 10년 만에 100쇄를 돌파한 소설 ‘남한산성’은 이를 기념하는 아트 에디션에 한국화가 문봉선의 그림을 수록하고 있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영화 속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문봉선(1961∼ ,홍익대 교수)의 ‘남한산성’(2017년 작)은 1636년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가장 치열했던 47일간의 역사와 상흔을 기억하고 있는 현장을 짙다 못해 검은 빛에 가까운 수묵화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언강 저편으로 남한산성 산줄기와 성곽의 윤곽이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느껴지지만 옛 역사의 한 장이라 생각하니 그 너머 하늘과 맞닿은 산자락이 비장한 울림을 준다.

전통적인 화법과 소재에서 새로운 감성에 맞는 현대 수묵화의 길을 열어가고 있는 문봉선교수는 소설의 장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림 컷 대신 소설의 여운과 여백을 단아한 필선으로 가시화했다. “슬프고 아픈 역사를 써내려간 소설을 읽고 남한산성을 답사하면서 떠오른 영감들을 붓으로 불러냈던” 문봉선교수의 소설 속 그림들은 “글이 모두 표출하지 못하는 이미지들을 화가가 성심으로 찾아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영화를 두 번 관람하고 소설까지 일독하면서 남은 것은, 적어 놨다 써먹고 싶어지는 대사들이다. 오늘 우리에게 죽어도 견딜 수 없는 것은 무엇이고, 그럼에도 견뎌야 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광주비엔날레광주폴리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