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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 광주지검 검사]선입견과 경청
2017년 05월 01일(월) 00:00
검사로서의 수사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고 나면 웬만한 형사사건은 조금만 기록을 넘겨보면 사실관계가 곧 파악되고 금방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곤 한다. 작년 여름 광주지검에 부임 후 얼마 되지 않아 경찰 ‘혐의없음’ 의견 송치 사건 하나를 배당받았다. 사기 고소 사건인데, 고소인은 피고소인이 6년 전 1000만원을 빌려 가서 갚지 않고 있으니 처벌해 달라고 하는 내용으로, 고소장에는 1000만원을 빌려준 사실을 증명하는 ‘현금차용증’이 첨부돼 있었다. 그러나 피고소인은 1000만원을 이미 갚았다고 주장하였고, 경찰 수사결과 고소인이 피고소인으로부터 3차례에 걸쳐 위 1000만원을 차명계좌를 통해 모두 변제받은 사실이 거래내역으로 확인됐다.

13년차 수사경험으로 보건대 이 사건은 딱 떨어지는 무고 사건이었다. 빌린 돈을 모두 돌려받았지만 고소인 본인의 계좌로는 받지 않은 점, 현금차용증을 돌려주지 않고 있던 점 등을 악용해 다시 한 번 1000만원을 받아내기 위해 6년이나 지나 피고소인을 사기죄로 고소한 사건임이 명백해 보였다. 고소인은 파출부 일이나 공공근로를 하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 생활보호대상자 아주머니였다. 고소인을 처음 불러 고소 이유를 물어보니, 6년 전 일이라 돈을 모두 돌려받은 사실을 깜빡해 잘못 고소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고소인의 생활형편에 1000만원이면 작은 돈이 아닌데 그 돈을 돌려받았는지를 기억하지 못해 6년 된 과거 현금차용증을 첨부, 고소했다는 것이 잘 납득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고소인을 무고혐의로 조사하기 위해 다시 불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피고소인에게 1000만원을 1회 빌려준 것이 아니라, 2회 빌려주었는데 그 중 1000만원만 돌려받고 나머지 1000만원은 돌려받지 못해 고소한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경찰조사와 검찰조사 때는 전혀 하지않았던 새로운 주장이었다. 물론 피고소인은 펄쩍 뛰었다. 피고소인은 1000만원을 1회 빌렸을 뿐이고 모두 갚았는데 고소인이 엉뚱한 고소를 한 것이라며 억울해 했다.

필자는 고소인을 상대로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허위고소를 하면 되냐고 추궁했다. 그러나 고소인은 계속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6년 전 1차로 피고소인에게 1000만원을 자기앞수표로 빌려주고 3일 후 다시 1000만원을 더 현금으로 빌려주었는데 현금으로 빌려 준 1000만원은 돌려받았으나 수표로 빌려준 1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사실이 이제야 생각났다고 했다.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생각하고 곧 무고죄로 입건하려 했으나 고소인이 제발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며 수표 추적을 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5년이 넘은 수표를 금융기관에서 보관하고 있을지 의문이었고, 고소인은 피고소인에게 건넸다고 하는 1000만원짜리 자기앞수표에 관한 정보도 제대로 특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검찰 수사관이 고소인의 기억을 따라 현장 탐문 끝에 최초로 수표를 발행한 참고인을 찾아내 조사하고, 2회에 걸쳐 계좌추적 영장을 발부받아 수표추적한 끝에 해당 자기앞수표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필자와 수사관은 수표 배서면을 보는 순간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고소인이 자필 배서를 한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시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불러 조사하자, 피고소인은 그제서야 고소인에게 현금 1000만원과는 별도로 같은 시기에 자기앞수표로 1000만원을 빌려 귀금속을 구입하는데 사용한 사실을 인정했다.

필자와 수사관은 고소인에게 무고 혐의를 의심했던 점을 사과했다. 그러나 고소인은 오히려 자기가 처음부터 1000만원을 2번 빌려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해 무고 의심을 받게 된 것이라며 미안해 했고, 검찰수사 덕분에 자신에게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1000만원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오히려 고마워 했다. 그러면서 검찰수사를 받는 동안 부담감에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는데, 검사로부터 수표추적을 하겠다는 말을 듣고부터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면서 잠을 잘 자게 되었다고도 했다. 그로부터 한 달 가량이 지나 고소인으로부터 편지가 1통 도착했다. 수표추적 결과가 밝혀진 후 검사실에서 피고소인과 마지막 대질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너무 고마워 조사 도중 눈물이 나왔지만 차마 울 수 없었고, 이번 조사를 통해 검찰청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고생하는 곳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간단한 1000만원짜리 사기 사건을 수사하면서 3번의 대질조사, 현장탐문, 참고인조사, 2회에 걸친 계좌추적 등을 진행했지만, 결국 의도했던 무고인지는 하지 못했고 그 사건은 그렇게 끝났다.

그렇지만 필자는 더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아무리 뻔해 보이는 사건도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면 안 된다는 것과 사건 관계인의 말이 터무니없어 보여도 끝까지 경청해야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초임검사 때부터 오랫동안 들어온 평범한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