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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광주지법 판사·기획법관] 두 아들이 준 교훈
2017년 02월 27일(월) 00:00
나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한 녀석은 6살, 한 녀석은 5살인데, 이 개구쟁이 형제는 그야말로 활력으로 똘똘 뭉친 우리 집의 귀염둥이다. 이 형제는 대체로 사이가 좋은 편이기는 하나, 여느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종종 여러 이유로 다투기도 하고, 어느 순간 한 녀석이 울고 있거나 토라져 있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부모의 시선이 머무는 범위에서 놀다 보니, 이 형제의 다툼은 보통 아빠(또는 엄마)의 한마디로 정리된다. “아빠가 봤어!”하면, 둘 중 잘못한 녀석이 “힝”하며 꼬리를 내리는 식이다. 통상 신뢰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반 년 정도 전일까, 어느 날 이 녀석들이 다투다가 엄마, 아빠 앞으로 불려 왔는데, 전혀 상반되는 말을 하며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누구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지 못했다. 당시 아내가 몹시 당황했던 표정이 지금도 기억나는데, 직업병이 발동했던 탓일까, 나는 누구 말이 진실인지 가려보고 싶었다. 어느 형사법 세미나에서 들었던 기억(심리학적 접근 방식에 바탕을 둔 아동 증인 신문기법, 그리고 아동 진술의 신빙성 판단 기준에 관한 발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을 되살려 아이들에게 하나씩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녀석 다 말이 대체로 일관성이 있고, 말의 앞뒤 맥락도 비교적 그럴 듯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 둘이 각각 아빠의 눈을 바라보며 자기 말이 진실이라 ‘변론’하는데, 정말 당혹스럽고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섣불리 하나를 지목해 추궁하다가는 아빠를 원망할까 싶어 그렇게도 하지 못했다. 결국에는 ‘진상 규명’을 포기하고 우는 아이들을 달래 함께 누워 잠을 재우는데, 마음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이것, 사건이었다면?’

보통 재판에서는 양 당사자의 주장이 대립하고, 양 당사자 모두가 만족하는 재판은 상정하기 어려우므로, 판사는 어느 한쪽의 주장을 배척하고 다른 한쪽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판사는 주장의 옮고 그름을 따지기 위해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고 의심하며 합리적인 결론을 찾으려 한다. 판사가 면밀히 검토한 후에도 당사자가 주장하는 사실이 진실인지를 확신하기 어렵다면? 이 경우에는 증명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따라 판단한다. 아이들 다툼에 증명책임을 운운하는 것이 우습지만, 어떤 사실을 증명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이를 증명해내지 못한다면, 판사는 그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한다는 의미이다.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돈을 빌려줬다고 주장하는 원고는 자신이 피고에게 돈을 빌려준 사실을 증명할 책임이 있고, 그 증거를 충분히 대지 못한다면 판사는 돈을 빌려준 사실이 없었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구체적 사건에서 사실 판단에 투입될 수 있는 시간과 자원, 그리고 판단의 기초가 되는 증거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증명책임이라는 개념은 사실관계 확정을 위한 유용한 장치가 된다.

두 아이들이 다툰 그 날 밤, 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왜였을까. 단순히 누구 말이 맞는지를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동안 재판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던 판단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법정에서 판사는 법률이 정한 증명책임 분배 원칙에 따라 판단해야 하지만, 아이들은 아빠인 나에게 ‘아빠가 진실을 밝혀 주세요’라고, 그 이상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이들 다툼의 원인에 대한 증명책임은 판사로서가 아닌 아빠인 나에게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누군가를 의심하고 그 주장을 배척하여 판단하는 것이 판사에게 주어진 당연한 업 중 하나라고만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러한 판단이 재판 당사자인 상대방에게 주는 의미와 그 무게를 가볍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요즘도 두 아이들은 잊을 만하면 이따금 내게 비슷한 숙제를 준다. 황희 정승처럼 ‘형 말이 맞다, 동생 말도 맞다. 그러니 이제 아빠랑 자자’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가기에는 우리 아이들이 제법 자란 것 같다. 믿음직한 아빠가 되려면 아무래도 내공을 더 많이 쌓아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오늘은 두 아이들이 평화롭게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