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바닷가에서 해녀들이 채취해 온 해산물을 즉석에서 맛보았던 경험은 특별했다. 그 바다의 싱싱한 식감을 제주의 해조음과 함께 낭만적으로만 생각했었던 적이 있다.

지난 주 다녀왔던 제주도에서 해녀를 만난 건 바다가 아니라 제주도립미술관이었다. 제주 해녀 문화가 여성 주도의 지역경제활동, 불턱에서 싹틔운 공동체정신, 배려와 공존의 미덕이 높이 평가되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 유산에 등재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미술관에서 본 장리석화백(1916∼)의 해녀 연작이 무척 인상 깊게 다가왔다.

장리석화백의 ‘남국의 여인들’(1988년 작)은 멀리 물질을 막 마치고 뭍으로 올라오고 있는 숨찬 해녀들의 모습과 바다로 들어가기 위해 채비를 하고 있는 해녀들을 근경으로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들리는 듯 고단하고 척박한 해녀들의 삶이 화백 특유의 갈색과 녹색, 황색의 향토성 짙은 질박한 색감 묘사로 화폭에서 강인하고 건강한 삶으로 살아난다. 화백의 해녀는 회화적 대상으로서의 여인이 아니라 거친 바다와 뭍에서 초인적인 삶을 이끌었던 강한 생명력의 제주 어멍이었다.

올해 100세의 화백은 평양 출신으로 한국전쟁시기 제주에서 4년여의 피난생활을 하면서 제주의 원시적인 풍경과 바다, 사람들의 삶에 빠져들었고 그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후일 제주를 떠나서도 제주가 안겨준 감성은 그에게 예술의 뿌리가 되었고 해녀 연작과 한라산, 조랑말, 제주의 오름과 바다 등은 화백의 중요한 그림 소재가 되었다. 제주를 담은 그의 작품들은 2005년 작가가 제주도에 110점의 작품을 기증해 탄생한 제주도립미술관의 장리석기념관에서 상시적으로 만날 수 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