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부터 15일까지 이세돌 9단과 구글사가 제작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 간의 세기의 바둑 대결이 개최되었다. 이세돌 9단의 분전 속에 대결은 4대1로 알파고가 승리하였다. 이세돌 9단이 보여준 인간의 무한한 능력도 인상 깊었지만 인공지능이 앞으로 인간의 삶에서 많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도 예상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미 인공지능이 여러 방면으로 개발돼 많은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하고 있다고 한다. 의료, 금융, 교육 등 새로운 영역에서 신규 사업모델을 창출해나가고 있으며, 특히 법률분야에 적용하면 방대한 판례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개별사건에 대한 유·무죄 판단과 형량 결정을 해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예측에 일부 네티즌들은 ‘인공지능이 재판을 하는 것이 현재 판사·검사가 재판하는 것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일 것이다’라는 취지의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우선, 이 같은 의견이 나온 것은 기존 법조계에 대한 불신이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할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까지는 아니지만 이미 검찰에는 ‘검찰양형시스템(PGS)’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구형결정에 참고 자료를 만들고 있다.

검찰양형시스템은 사안에 따라 피해정도, 합의여부, 전과유무 등을 입력하면 축적된 기존 판결문 등을 바탕으로 권장 검찰 구형량(형사재판에서 수사 및 피고인 심문 등을 토대로 구체적인 형벌 종류 및 형량을 법원에 요구하는 것을 검찰 구형이라 함)을 산정해주는데, ‘징역 1년에서 징역 3년 사이’와 같이 일정한 범위를 정하여 알려준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안을 조금 더 따지고 들어가보면 전적으로 인공지능 프로그램만을 사용해 구형을 정하는 것은 다소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필자가 몇 년 전 배당받은 사기 사건 중에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피해자가 70억원 상당의 해외 수출계약을 체결하기 직전 상대방 회사의 요청으로 시중은행이 발행한 지급보증서가 필요하게 되자, 피의자가 보증서를 발급받아주겠다며 그 수수료로 3억원을 편취한 사건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피의자는 보증서를 발급받아 줄 의사나 능력이 전혀 없었고, 이로 인해 피해자는 70억원 상당의 수출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그 회사는 도산하였다. 심지어 피의자에게 지급한 3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사채까지 사용한 피해자는 그 후 몇 년간 가족들과도 뿔뿔이 흩어져 도피생활을 하였다.

또 필자가 배당받았던 다른 사기 사건 중에는 피의자가 피해자인 대부업체로부터 3억원 상당을 차용하였는데 차용 당시 채무가 과다해 변제 능력이 없었다고 판단되나 고율의 이자는 상당부분 지급했던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들은 3억원을 편취하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였는지, 그 결과 피해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검찰양형시스템은 일정한 범위를 정해 권장 구형량을 제공하나 결국 최종적인 구형은 권장 구형을 참작해 검사가 결정하는 것이다.

인공지능 법조인이 등장하면 지연·학연·여론 등에 흔들리지 않고 재판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사안의 차이를 반영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공지능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발달할지는 모르지만 당사자의 말을 경청해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피의자를 엄히 꾸짖을 수 있는 수사와 재판을 하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형사재판은 죄를 지은 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를 설득해 뉘우치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목표 중에 하나인데, 이를 하는 것도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사람을 상대로 사람의 행동을 판단하는 재판은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에게 그 역할을 뺏기지 않으려면 법조인들이 부단히 노력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