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15년 동안의 외국생활을 통해 애국심과 함께 ‘국가’라는 존재에 대한 감사함을 갖게 되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3년 동안의 군법무관 생활은 이를 더욱 강하게 키워주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명절 때 베란다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나라사랑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검사로 임관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지난 1년은 다양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그 어느 해보다 바빴고 많은 사람을 만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작은 말다툼에서 시작된 동네주민들 사이의 폭행 사건, 한평생 성실하게 교직생활을 해오다가 순간의 실수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 배우자가 있는 여자를 사랑하는 것처럼 속여 이혼하게 한 후 재산을 모두 빼앗은 사기 사건 등등. 매번 새로운 사건의 당사자들을 만났다.

똑같은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고소인은 고소인대로 피의자는 피의자대로 저마다 억울한 사정이 있고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점이다. 최대한 모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노력과 시간이 부족했다고 변명해본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앞뒤 모두 자르고 사안의 쟁점에 대해서만 나의 질문에 답변해주었으면 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실제로 그랬던 적도 있었다.

1억원이 넘는 피해자의 재산을 횡령한 사건이 있었다. 피의자에게는 부양해야 할 식구가 여럿 있었으나 피해의 정도가 크고 피해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어 구속하였다. 아무래도 수사의 초점은 업무상횡령죄의 구성요건에 맞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피의자는 대부분 자백하였지만 말로만 잘못했다고 할 뿐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구속된 후 아무래도 피의자 가족의 근황과 앞으로의 생계 등이 신경 쓰였다. 피의자를 재차 소환하여 사건 외적인 부분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았다. 그러자 피의자는 눈물을 보이며 진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을 구속시켰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내용의 감사편지까지 교도소에서 보내왔다.

어쩌면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선처보다는 누구에게나 있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이런 부분에 있어서 충실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의 검사생활도 지금처럼 혹은 지금보다도 더 바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단순히 사건 처리에 필요한 것만 묻고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집행할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청하여 사건관계인들이 수긍할 수 있는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것이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나라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힘차게 2년차 검사생활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