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다디 담다디 담다디담∼’ 앳된 모습의 18세 소녀(한양대 연극영화과 1년)는 그해(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혜성 같이 등장했다. 유난히 키(178㎝)가 커서 겅중거리던 그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짧은 머리에 허스키한 목소리. 소년 같은 묘한 매력을 지녔던 그녀. 이름마저 중성적이었으니 남자로 착각한 이들도 많았다. 실제로 그녀보다 한 살 어렸던 홍석천이 한양대에 진학한 것도 가요제에 나온 그녀(혹은 그?)에게 반했기 때문이었다지 않은가.
그녀는 그러나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상업노래가 판치는 가요계에 염증을 느낀 것이다. 그녀는 한국을 떠나 미국·일본·유럽 등지를 떠돌며 자신만의 음악색을 확고히 해 나간다.
그러다 1995년, 갑자기 예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음악을 들고 돌아오니 대중들은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인다. 6집 앨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 일본에서 발매된 뒤 우리나라에 역수입된 것이다.
이상은(44). 그녀는 이 6집 음반을 통해, 아이돌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진정한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된다. 특히 타이틀곡 ‘공무도하가’는 훗날 최고의 걸작이란 평을 듣는다.
“님아, 님아, 내 님아, 물을 건너가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예 물을 건너시네/ 아∼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아∼ 가신 님을 어이 할꼬” 그녀의 노래는 지금 다시 들어도 그 애절한 목소리와 구슬픈 가락으로 인해 온몸에 전율이 인다. 그러니 “고조선의 시가(詩歌) ‘공무도하가’는 이상은에 이르러 독보적인 아름다움과 슬픔을 내뿜었다”는 김선우(시인·소설가)의 말에 속절없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담다디 소녀의 ‘공무도하가’
그녀는 어떻게 이런 뛰어난 노래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음반 발매 당시 그녀가 했던 말이 있다. “고교 2학년 고전문학 수업시간 때 선생님께서 ‘공무도하가’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어요. ‘지금은 우리가 이 노래를 시(詩)로 배우고 있지만, 그 당시엔 많은 사람들이 유행가처럼 불렀던 노래였다’고. 이 말을 듣고 그 멜로디가 남아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고조선 시대 곽리자고와 그의 아내 여옥의 설화가 얽혀 있는 노래 공무도하가. 어느 날 자고(子高)가 새벽에 일어나 배를 저어 가는데, ‘머리가 흰 미친 사람’(白首狂夫)이 술병을 든 채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뒤쫓아 왔으나 그 사람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에 그의 아내가 ‘공무도하’(公無渡河:님아, 강을 건너지 마오) 울부짖으며 노래를 지어 부르니 그 소리가 심히 구슬펐다. 아내 또한 물속으로 뛰어들어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이 모습을 본 자고가 돌아와 금방 들었던 노래를 여옥에게 들려주고, 여옥은 곧바로 그 소리를 받아 공후(우리나라 고대 현악기)로 연주하니, 듣는 자 가운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공무도하(公無渡河)/ 공경도하(公竟渡河)/ 타하이사(墮河而死)/ 당내공하(當奈公何)”(아쉽게도 이 노래는 한문으로만 전해진다)
겨울 극장가에 ‘현대판 공무도하가’라 불러도 무방할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훈풍이 불고 있다. 실제로 조그만 강이 흐르는 강원도 횡성의 어느 아담한 마을. 할머니(89)와 할아버지(98)는 어디를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은 채 걷는다.(사실 그 모습이 어느 기자의 눈에 띄어 지방신문에 보도된 이후, 텔레비전 ‘인간극장’에도 나오고 이번에 영화로도 제작된 것이다. ‘커플 한복’은 해마다 자녀들이 생일선물로 해 준 것이고.)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의 모습이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다. 봄에는 예쁜 꽃을 서로의 머리에 꽂아 주고, 여름이면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가을에는 낙엽을 서로에게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하다 언 손을 호호 불어준다. 두 분이 이렇게 하루하루를 마치 신혼처럼 살아온 세월이 무려 76년.
할아버지는 밥이 맛있으면 많이 먹고, 맛없으면 조금 들 뿐, 절대 맛없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밤중에 화장실에 가면서도 무섭다며 할아버지에게 보초를 서게 하는 것도 모자라 노래까지 불러 달라고 하지만, 이 시대의 최고 로맨티시스트인 할아버지는 군말 없이 모두 다 들어준다.
사랑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아, 사랑이란 그런 것. 상대방이 원하는 작은 것들을 말없이 들어주는 것. 내 작은 불만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 것. 상대방이 나로 인해 즐거워하는 걸 보며 즐거워할 줄 알며, 작은 배려에도 늘 감동할 준비가 돼 있는 것.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상대의 곁에서 늘 지키며 함께하는 것.
하지만 어쩌랴. 언젠가는 갈라서야 하는 것이 인생이거늘. 할아버지를 보내야만 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애처롭다. 병석에 누운 할아버지의 헌 옷을 태우며 슬픔에 잠긴 할머니의 말이 우리를 울린다. “내가 곧 갈게요. 할아버지 먼저 가서 정리하고 있어요. 내가 금방 못 가거든 할아버지가 데리러 와요. 데리러 오면 내가 할아버지 손잡고 ‘커플 옷’으로 새파란 치마를 입고, 노란저고리를 입고, 손을 잡고 그렇게 갑시다.”
전혀 연출 없이 1년 3개월 동안 노부부와 함께 생활하며 영화를 찍었다는 진모영(44·광주 문성고 및 전남대 법대 출신)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손잡고 와서 영화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 감독은 그렇게 말함으로써 이 영화의 주제 또한 ‘사랑’임을 넌지시 알려 주는 것이다. 가식이 없는 순도 100%의 사랑.
그래서 영화는 또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연인이나 아내·남편 그리고 부모님-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지금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영화는 그렇게 우리들의 가슴속에 따뜻한 화롯불을 지피는데.
함께 영화를 본 그녀는 왜 그리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을까. 아마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목이 메었던 게지. 영화를 보고 눈물 콧물 다 쏟았다는 그 많은 관객들. 그들 또한 저마다 시린 사연 하나씩은 지니고 있을 테고, 그러니 자기 설움 섞어 그렇게들 울음 울었던 게지.
짧은 머리에 허스키한 목소리. 소년 같은 묘한 매력을 지녔던 그녀. 이름마저 중성적이었으니 남자로 착각한 이들도 많았다. 실제로 그녀보다 한 살 어렸던 홍석천이 한양대에 진학한 것도 가요제에 나온 그녀(혹은 그?)에게 반했기 때문이었다지 않은가.
그러다 1995년, 갑자기 예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음악을 들고 돌아오니 대중들은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인다. 6집 앨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 일본에서 발매된 뒤 우리나라에 역수입된 것이다.
이상은(44). 그녀는 이 6집 음반을 통해, 아이돌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진정한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된다. 특히 타이틀곡 ‘공무도하가’는 훗날 최고의 걸작이란 평을 듣는다.
“님아, 님아, 내 님아, 물을 건너가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예 물을 건너시네/ 아∼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아∼ 가신 님을 어이 할꼬” 그녀의 노래는 지금 다시 들어도 그 애절한 목소리와 구슬픈 가락으로 인해 온몸에 전율이 인다. 그러니 “고조선의 시가(詩歌) ‘공무도하가’는 이상은에 이르러 독보적인 아름다움과 슬픔을 내뿜었다”는 김선우(시인·소설가)의 말에 속절없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이런 뛰어난 노래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음반 발매 당시 그녀가 했던 말이 있다. “고교 2학년 고전문학 수업시간 때 선생님께서 ‘공무도하가’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어요. ‘지금은 우리가 이 노래를 시(詩)로 배우고 있지만, 그 당시엔 많은 사람들이 유행가처럼 불렀던 노래였다’고. 이 말을 듣고 그 멜로디가 남아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고조선 시대 곽리자고와 그의 아내 여옥의 설화가 얽혀 있는 노래 공무도하가. 어느 날 자고(子高)가 새벽에 일어나 배를 저어 가는데, ‘머리가 흰 미친 사람’(白首狂夫)이 술병을 든 채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뒤쫓아 왔으나 그 사람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에 그의 아내가 ‘공무도하’(公無渡河:님아, 강을 건너지 마오) 울부짖으며 노래를 지어 부르니 그 소리가 심히 구슬펐다. 아내 또한 물속으로 뛰어들어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이 모습을 본 자고가 돌아와 금방 들었던 노래를 여옥에게 들려주고, 여옥은 곧바로 그 소리를 받아 공후(우리나라 고대 현악기)로 연주하니, 듣는 자 가운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공무도하(公無渡河)/ 공경도하(公竟渡河)/ 타하이사(墮河而死)/ 당내공하(當奈公何)”(아쉽게도 이 노래는 한문으로만 전해진다)
겨울 극장가에 ‘현대판 공무도하가’라 불러도 무방할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훈풍이 불고 있다. 실제로 조그만 강이 흐르는 강원도 횡성의 어느 아담한 마을. 할머니(89)와 할아버지(98)는 어디를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은 채 걷는다.(사실 그 모습이 어느 기자의 눈에 띄어 지방신문에 보도된 이후, 텔레비전 ‘인간극장’에도 나오고 이번에 영화로도 제작된 것이다. ‘커플 한복’은 해마다 자녀들이 생일선물로 해 준 것이고.)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의 모습이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다. 봄에는 예쁜 꽃을 서로의 머리에 꽂아 주고, 여름이면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가을에는 낙엽을 서로에게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하다 언 손을 호호 불어준다. 두 분이 이렇게 하루하루를 마치 신혼처럼 살아온 세월이 무려 76년.
할아버지는 밥이 맛있으면 많이 먹고, 맛없으면 조금 들 뿐, 절대 맛없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밤중에 화장실에 가면서도 무섭다며 할아버지에게 보초를 서게 하는 것도 모자라 노래까지 불러 달라고 하지만, 이 시대의 최고 로맨티시스트인 할아버지는 군말 없이 모두 다 들어준다.
사랑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아, 사랑이란 그런 것. 상대방이 원하는 작은 것들을 말없이 들어주는 것. 내 작은 불만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 것. 상대방이 나로 인해 즐거워하는 걸 보며 즐거워할 줄 알며, 작은 배려에도 늘 감동할 준비가 돼 있는 것.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상대의 곁에서 늘 지키며 함께하는 것.
하지만 어쩌랴. 언젠가는 갈라서야 하는 것이 인생이거늘. 할아버지를 보내야만 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애처롭다. 병석에 누운 할아버지의 헌 옷을 태우며 슬픔에 잠긴 할머니의 말이 우리를 울린다. “내가 곧 갈게요. 할아버지 먼저 가서 정리하고 있어요. 내가 금방 못 가거든 할아버지가 데리러 와요. 데리러 오면 내가 할아버지 손잡고 ‘커플 옷’으로 새파란 치마를 입고, 노란저고리를 입고, 손을 잡고 그렇게 갑시다.”
전혀 연출 없이 1년 3개월 동안 노부부와 함께 생활하며 영화를 찍었다는 진모영(44·광주 문성고 및 전남대 법대 출신)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손잡고 와서 영화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 감독은 그렇게 말함으로써 이 영화의 주제 또한 ‘사랑’임을 넌지시 알려 주는 것이다. 가식이 없는 순도 100%의 사랑.
그래서 영화는 또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연인이나 아내·남편 그리고 부모님-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지금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영화는 그렇게 우리들의 가슴속에 따뜻한 화롯불을 지피는데.
함께 영화를 본 그녀는 왜 그리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을까. 아마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목이 메었던 게지. 영화를 보고 눈물 콧물 다 쏟았다는 그 많은 관객들. 그들 또한 저마다 시린 사연 하나씩은 지니고 있을 테고, 그러니 자기 설움 섞어 그렇게들 울음 울었던 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