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검으로 부임한 후 거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관사까지 걸어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관사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니 출퇴근을 하면서 고즈넉이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을 한 시간 정도 번 셈이다. 늘 앉아서 일하느라 운동이 부족한 기색이 역력한 딸을 볼 때마다 걱정스런 말씀을 보태시는 부모님 탓이기도 하고, 운동을 시작한 후 지방 가득한 뱃살 밑에 복근이 살아 꿈틀거린다며 자랑하는 남편한테 살짝 경쟁심이 느껴지기도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계속하게 된 건 아마도 옆자리에 앉아 있는 광주 토박이 검사가 알려준 ‘옛 철길’이란 참 걷기 좋은 길 덕분인 듯하다. 지난 몇 달 동안 옛 철길 주변의 나무들은 옆 집 갓난아기처럼 볼 때마다 쑥쑥 자라는 것 같더니 지금은 허리춤에 노란 리본을 달고 의젓하게 서 있다.

몇 주 전쯤 국민참여재판을 준비하려고 주말에 나왔다가 해 질 무렵 퇴근하던 길에 노란 리본과 촛불로 옛 철길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요즘에는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순간’을 그냥 보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팽목항에서는, TV를 보다가 도저히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 나왔다는 아주머니들과, 인터넷에서 어떻게라도 힘을 보태야겠다며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왔다는 젊은 청년들이 나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한 때는 자원봉사자가 너무 많아 전남도에서 자원봉사를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야할 정도였다고 한다. 집 안에 앉아 팽목항에서 들리는 뉴스에 놀라거나 우울해하고 화를 내는 대신 하던 일을 접고 팽목항으로 달려가 슬픔에 빠진 가족들을 위로하고 옷가지를 빨아주고 식사를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은, 무책임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재난 끝에서 작은 희망을 보여주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 생각에 옛 철길에서 노란리본을 장식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담긴 작은 목례를 보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검찰청이나 법원에서 이루어지는 수사 및 재판 과정은 모두 지나간 일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이다. 검사들은 매일매일 과거에 일어난 사람들 사이의 분쟁이나 잘못을 되짚으면서 실체적 진실을 찾는 일을 하기 때문에 사건관계인들의 과거는 검사들에게는 현재가 된다. 결국 검사들에게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사는 방법이란, 사건관계인들의 과거를 끊임없이 되새겨 과거를 있는 그대로 재구성함으로써 진실을 밝혀내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세월호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합수부에서는 그 날 이후 매일을 사건이 발생했던 2014년 4월 16일 오전으로 돌아가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누구의 책임인지를 제대로 가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공자님 말씀 중에 “미래를 결정짓고 싶다면 과거를 공부하라”는 말씀이 있다. 공자는 역사적 성찰이야말로 인간의 갈 길을 밝혀주는 믿음직한 지표라고 믿었기 때문에 ‘성찰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고 심판하지 않으면 진보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와 같은 견지에서 보면 검사들이 끊임없이 집착하며 시시비비를 가려내고 있는 개개인의 역사에 대하여 올바르게 성찰하고 심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올바른 방향으로 결정지어 나가는 중요한 주춧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작 합수부에서 끊임없이 2014년 4월 16일로 돌아가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과 책임을 가려 책임 있는 사람들을 엄단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조만간 광주지방법원에서 시작될 예정인 세월호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에서는 우리 사회가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세월호의 침몰이라는 비극적 사건의 실체에 대한 진정한 성찰과 올바른 심판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