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의 변호인으로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기록을 복사해 공소장 죄명 및 공소사실을 확인해보는 일이다. 대부분 공소사실을 읽으면서 유죄의 선입관을 가지게 되는 것 같고 특히 국선사건의 경우 더욱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매너리즘을 반성하게 한 사건이 필자에게 있었다.

올 봄 외부 출장 중에 사무실에서 걸려온 급한 전화를 받게 됐다. 강도죄로 아들이 구속돼 있는 아버님이 찾아와 변호인으로 선임하겠다며 집행유예의 선처를 받도록 해달라는 취지였다.

급한 외부 일정 때문에 선임 관계를 사무장에게 일임했고 다음날 경찰서 유치장에 피의자 접견차 아들을 만났더니 사건은 단순 강도가 아닌 강도상해 사건이었다.

강도상해죄는 법정 최저형량이 7년으로, 집행유예가 불가능한 사안임에도 집행유예를 조건으로 선임한 셈이 된 것이다. 당사자의 아버지가 사안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 잘못도 있지만 필자는 난감한 입장이 돼 버렸다.

아무튼 피의자로부터 사건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기로 했다. 사건의 경위는 대략 이러했다. 친구와 날치기를 공모한 뒤 자신은 운전만 해주었는데, 실행에 옮긴 친구가 피해여성으로부터 핸드백을 낚아채면서 피해자를 밀쳐서 부상을 입게 한 사안으로, 결국 강도상해죄로 함께 기소된 것이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 어렵게 사시는 분이고, 사건 당사자는 나이도 어렸으며, 이들은 날치기하려는 친구를 위해 자동차를 운전만 해주었을 뿐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구속까지 됐다고 억울해 했다.

기록을 복사해 검토해보니 피고인은 물론 친구도 수사기관에서부터 순순히 범행 과정을 인정, 처음에는 무죄변론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꼼꼼히 기록을 검토하면서 이 사인이 전형적인 강도가 아닌 ‘날치기’로부터 시작된 사건이라는 점을 단서로 변론 방향을 잡았다.

‘날치기’의 형법상 죄명은 절도이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물리력 행사는 예견돼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할 정도의 폭행 협박을 한 경우가 아닌 날치기로 물건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한 부상은 강도상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 사안을 집중 부각해 변론을 시작했다. 또 마치 사법시험 2차 단문 문제에 대한 답안과 같은 내용의 변론요지서도 제출했다.

원심은 강도상해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다만 특수절도죄에 대해서는 집행유예 선고했으며, 이에 검찰이 항소했으나 항소심에서도 같은 취지로 검사의 항소가 기각됐다. 원심이 확정된 것이다.

필자에겐 희열을 준 사건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다시 한 번 느낀 부분은 첫째, 공소장을 보고 사건에 대해 선입관을 가지지 말자는 것이었고, 둘째는 법조문과 이에 따른 구성요건을 반드시 다시 한 번 확인하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기본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변호인으로 선임한 아버지나 피의자는 이 법리 다툼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 어린 피의자가 이번 재판을 통해 당연히 선처 받은 것으로 여기고 변호인이 얼마나 치열하게 다툼을 벌였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재범을 저지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변호사〉